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출석에 대비해 비워둔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이준석 기자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를 이틀 앞둔 23일 오후 정부과천종합청사. 민원인·직원 주차장이 가득차면서 도로 갓길에 주차된 차량도 심심찮게 보였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는 5동 주변 갓길에는 차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곳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 출석에 대비해 비워둔 자리다. 공수처는 건물 현관과 출입구 부근 길목을 경호 및 경찰 차량 주차 구역으로 지정했다. 통상 현직 대통령이 기관 등을 방문할 경우 대통령경호처는 안전 점검 등을 위해 미리 현장을 둘러보고, 당일에는 다수의 경호차와 순찰차가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하루 동안 5동 주변 길목에 주차한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 건물 내외부에도 경호처 관계자와 경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출석을 앞두고 경호처에서 협의 요청이 들어온 건 없지만, 일단 준비하고 있다"며 "일단 만일을 대비해 경호처,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주차 구역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尹측 '불출석' 암시…준비도, 손 놓기도 애매한 공수처
황진환·류영주 기자·대통령실 제공윤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동선, 경호 인력 배치 등 해결해야 문제가 산더미지만 윤 대통령 측은 경호 협의 요청은 물론 공수처가 보낸 소환 통보 전자 공문도 읽지 않고 있다.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 등으로 꾸려진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실, 부속실에 발송한 출석요구서는 '수취인 불명', 대통령 관저에 보낸 요구서는 '수취 거절'인 것으로 현재 시점 우체국 시스템상으로 확인된다"며 "전자 공문도 미확인 상태"라고 밝혔다.
여기에 윤 대통령 측 장외 대리인을 자처하는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절차가 먼저 이뤄지고, 대통령 신분을 상실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됐었다"며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는 경호 협조 요청이 없고 윤 대통령의 변호사 선임계 등도 제출되지 않았기에 윤 대통령이 오는 25일 출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에 윤 대통령이 출석하면 2~3층 조사실 중 한 곳에서 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 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일반 피의자와 참고인은 청사 안내동에서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아 공수처 건물로 이동하지만, 윤 대통령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이동할지, 차량을 타고 바로 공수처 건물로 이동할지 등도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조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 검찰과 출석 동선을 상의하는데, 대통령이 조사를 받는데 아무런 상의도 없다는 건 조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같다"며 "출석 의사가 있다면 미리 사전 준비를 마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두 차례에 걸쳐 소환을 통보했던 수사기관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출석할 경우, 당장 조사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향후 수사 일정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출석을 제대로 준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기도 어려운 처지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호의 문제는 공조본 혼자서 준비할 수 없는 문제"라며 "수사와 관련한 부분은 다양한 증거와 진술 등을 토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