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롱 피아비가 7일 새벽 끝난 '하나카드 PBA 챔피언십'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PBA'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우리금융캐피탈)가 기나긴 슬럼프에서 벗어나 모처럼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무려 13개 대회, 1년 5개월 만의 정상 등극이다.
스롱은 7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끝난 '하나카드 PBA 챔피언십' 여자부 결승에서 김보라를 눌렀다. 7전 4승제 대결에서 4 대 1(11-2 3-11 11-10 11-10 11-2) 승리로 우승컵과 상금 4000만 원을 거머쥐었다.
2023-24시즌 8차 투어인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이후 1년 5개월여 만에 축포를 쐈다. 스롱은 다음 투어인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준우승에 머물렀다.
길었던 부진의 늪에서 탈출했다. 스롱은 지난 시즌 9개 투어에서 한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2022-23시즌 초대 PBA 여자부 대상에 빛났던 스롱은 2023-24시즌에도 2번의 우승을 차지했지만 지난 시즌은 초라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올 시즌 개막전이자 소속팀이 타이틀 스폰서로 나선 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에서는 1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스롱은 올 시즌 2차 투어에서 절치부심했다. 특히 여자부 절대 1강으로 군림하던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을 4강에서 잡으며 우승을 예감했다.
스롱은 7번 정상에 오르며 한때 김가영의 라이벌로 경쟁을 펼쳤지만 지난 시즌 완전히 밀려난 상황이었다. 김가영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도 정상을 정복하며 역대 최장인 8연속이자 15번째 우승을 거뒀다.
이런 가운데 스롱이 김가영을 3 대 1로 잡은 데 이어 결승에서도 절친 김보라의 생애 첫 결승 진출 돌풍을 잠재웠다. 결승에서 스롱은 1 대 1로 맞선 3세트 10 대 6으로 앞서다 동점을 허용했지만 침착하게 옆돌리기를 펼쳐 승기를 잡았다. 4세트는 5 대 10으로 쫓기다 4이닝에서 6점을 내며 역전했고, 5세트에는 과감한 1뱅크 넣어치기 등 폭풍 8점을 몰아쳐 우승을 확정했다.
스롱과 김보라가 '하나카드 PBA 챔피언십' 여자부 결승에 앞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PBA경기 후 스롱의 부진에 대한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먼저 인터뷰실로 들어선 준우승자 김보라는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사랑하는 친구가 우승해서 기분이 좋다"면서도 "1년 동안 스롱이 본인이 만든 한국-캄보다이재단 등의 문제로 굉장히 힘들어 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 전에는 훈련도 같이 했는데 1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연락만 했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부진과 관련한 질문에 스롱은 처음에는 "개인 사정이라 비밀로 하고 싶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곧이어 "집이 이사를 자주 가느라 바빴고, 훈련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면서 "이제 남편 집은 충남 당진군이고, 나는 (전용 경기장과 가까운)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머물면서 1~2주에 한번씩 반찬을 해서 당진으로 가고 바다 낚시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스롱은 "모은 돈으로 캄보디아에 계신 부모님 집을 지으려고 남편이 현지에서 사업을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면서 "잘 하겠지 했는데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하루 아침에 날리니까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부모님이 에어컨이 나오는 집에 시원하게 사셔야 하는데 집이 너무 덥고 비도 오는(새는) 상황이었다"면서 "부모님 눈치도 봐야 했다"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들려줬다.
스롱은 PBA 진출 뒤 이번 대회 전까지 3억 원 가까운 상금을 기록했다. 여기에 소속팀 연봉과 용품업체 후원까지 적잖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고충을 겪어야 했다.
다만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을 당구에 입문하게 만든 은인이기 때문이다. 스롱은 "뭐가 있어도 당구를 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남편이 고맙다"면서 "사실 처음에는 당구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는 당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에 대해 엄청 복잡하지만 항상 든든하다"면서 "남편 일이 잘못됐어도 다 잊고 새롭게 가자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스롱과 남편 김만식 씨. 스롱 SNS스롱은 지난 2010년 결혼 이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이듬해 28살 연상인 남편 김만식 씨의 권유로 당구에 입문했다. 3년 동안 아마추어 대회를 평정한 스롱은 2017년 선수로 변신해 2018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 동메달, 2019년 아시아3쿠션여자선수권대회 금메달 등을 따냈다.
대한당구연맹(KBF) 랭킹 1위, 세계캐롬연맹(UMB) 랭킹 2위에 오른 스롱은 2020-2021시즌 PBA로 진출해 김가영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2022-23시즌에는 통산 다승 단독 1위에 오르며 김가영을 제치기도 했다. 스타로 우뚝 선 스롱은 고국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 선행을 펼쳐 '캄보디아의 김연아'로도 불렸다. 지난 시즌 우여곡절을 겪게 되면서 긴 슬럼프에 빠졌지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전까지 힘들게 운동했다면 지금은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스롱은 "10년 넘게 당구를 하면서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도우려고 재단에 지원만 해줬다"면서 "그래서 내 시간이 없었고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우승하지 못해 상금도 없어 재단에 내 돈을 써야 하니 마음이 아팠다"면서 "경기 때 왜 웃지 않느냐고들 하시는데 도와주고 지원을 해주려면 꼭 이겨야 했다"고 털어놨다. 스롱은 "이제는 지원을 해주면서도 맛난 음식 먹고, 좋은 옷도 입고 부모님과 조카 등 가족들을 초대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PBA 장상진 부총재(왼쪽부터), 김보라, 스롱, 하나카드 성영수 대표가 기념 촬영한 모습. PBA이제는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스롱은 "우승이 한동안 없으니까 이제 설마 못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시 우승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면서 "오랜만에 우승하니 해냈다는 감정과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억지로 치려고 했던 옛날의 피아비가 되면 안 된다는 목표를 세웠다"면서 "웃으며 재미있게 편하게 운동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스롱은 "조카가 4명이 있는데 너무 좋고 한국에 초대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부모와 가족, 나아가 조국을 위해 스스로 너무 많은 짐을 져야 했던 스롱. 한때 '캄보디아 김연아'로 불릴 만큼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그 무게에 짓눌려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과연 스롱이 부담을 떨쳐내고 다시 한번 PBA 여자부를 주름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