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윤석열 정부에서 미래형 교육의 핵심 과제로 앞세웠던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을 놓고 여권에서도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교과서 지위에서 교육자료로 강등시키겠지고 나섰지만, 하정우 대통령실 인공지능(AI) 미래기획수석은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 한해 각 학교가 도입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방향을 틀었지만, 대다수 학교에서는 지난해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인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비토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교사들은 "이미 보급된 크롬북(Chromebook)과 기존 디지털 자료만으로도 수업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굳이 새로운 AI 디지털 교과서까지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조 자료 수준에서의 활용은 수업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종이 교과서처럼 '공식 교과서'로 삼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업 교재로 활용 중인 크롬북 모니터(왼쪽)와 크롬북 충전 장치. 김다연 인턴기자교육 현장에서는 지난 3월 신학기부터 크롬북과 같은 디지털 기기가 교실에 보급되며 종이 교과서의 보조 자료로 일부 수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 3~4학년을 비롯해 중·고등학교 교실마다 디지털 기기 보관함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임지하(27)씨는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수업 시작 전에 로그인을 하는 것조차 큰 어려움"이라며 "태블릿조차 부족해 보급되지 못한 교실이 있는데 AI 디지털 교과서까지 도입하자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중고교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23)씨는 "(도입) 초기에 크롬북을 활용한 수업을 시도했지만 학생들이 예상보다 적응에 어려워 해 수업 준비에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오히려 디지털 교육자료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집중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동작구에서 30년째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이모(54)씨는 "종이 교과서 대신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면 학생들이 딴짓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교실에서 잘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장의 우려는 설문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지난 3월 전국 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직원 6,3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7%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 인식은 낮은 활용률로도 이어지고 있다. 백 의원이 지난 4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도교육청별 AI 디지털 교과서 플랫폼의 학생 가입자 수와 일일 평균 접속자 수는 한 자릿수 비율에 그칠 정도로 활용률이 매우 저조했다.
그럼에도 교육 당국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디지털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2학기 AI 디지털 교과서 사용 신청을 즉각 중단하라"며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교사들 뿐만 아니라 AI 디지털 교과서를 제작한 업체 측도 혼란을 겪고 있다. 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한 개발자는 "시간과 예산을 들여 콘텐츠를 제작했지만, 남은 과목이나 학년에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급격히 줄었다"며 "업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