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할 생각 없었다"…밈처럼 번진 협박글, 놀이가 된 정치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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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겨냥 살해·위해 협박글 수사 잇따라
李대통령 가족 '일거에 척결' 게시자 뒤늦은 후회
"비슷한 글 많아 적었다", "실제 위해 의사 없다"
그럼에도 경찰 '공중협박 혐의'로 피의자 송치
풍자성으로 포장, 폭력·범죄 행위 정당화 우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최근 온라인상에서 이재명 대통령 등 정치인을 겨냥해 살해를 암시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내용의 협박성 게시글이 늘어나며 경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에 적발된 피의자들 대부분이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며 '실행할 의사는 없었다', '장난이었다' 등의 취지로 진술하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정치 폭력이 '밈'(meme)'처럼 유행하면서 일종의 놀이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위험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들 하길래 나도…장난처럼 쓴 글이 범죄로

"누구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냥 저도 자연스럽게 올렸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통령 가족을 테러하겠다는 취지의 게시글을 올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50대 회사원 A씨의 진술이다. 실행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취지로, 그는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달 9일 '스레드'(Threads)에 이 대통령 아들의 결혼식 장소의 지도 사진과 함께 예식 일시를 거론하며 '진입 차량 번호 딸 수 있겠군'이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카테고리는 '일거에 척결'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가족을 겨냥한 테러 모의글. SNS 캡처이재명 대통령 가족을 겨냥한 테러 모의글. SNS 캡처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A씨는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불안한 마음에 112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이런 글을 올리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등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A씨는 이튿날인 11일 서울 성북경찰서 형사팀에게 붙잡혔다. 검거된 이후 A씨는 "글은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위해(危害)를 가할 의사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비슷한 글이 많은데 본인이 유난히 문제가 된 것 같다는 취지의 억울함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씨의 SNS 계정에는 "순전히 풍자로 적은 글이다"며 "풍자성 게시물을 올린 점을 사과드린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에도 형사 절차는 그대로 진행됐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A씨를 공중협박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사례 외에도 특정 정치적 성향에 기반한 협박글 수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 대통령을 향한 위해·살해 협박글을 SNS에 올린 남성 2명과 여성 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 모두 협박글을 작성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장난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지난 5월 1일에는 '스레드'(Threads)에 "판사들을 사살해야 하나"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있던 날에 게시됐는데, 경찰은 대법원을 겨냥한 협박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밈'화된 정치 폭력…엄중 처벌·플랫폼 규제 필요

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이미지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정치 폭력이 온라인상 놀이 문화와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단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 질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특정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폭력적으로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풍자라는 허울 아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라며 "정치 폭력이나 정치 테러가 '즐거움의 코드'로 미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해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보던 중 한 남성으로부터 흉기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이러한 유형의 범죄는) 오프라인 범죄보다 덜 심각하다고 인식된다"며 "밈처럼 번지는 협박글도 가볍게 여기고 방치하면 우리 사회가 불신과 불안에 잠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지금 경찰력으로는 24시간 감시해서 예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에 대한 법원의 경고성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가볍게 처벌하면 범죄에 대한 억제 효과가 없어진다"며 "장난기 섞인 범죄라 하더라도 잠재적인 두려움과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NS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 책임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심영섭 겸임교수는 "밈화될 정도로 일상적인 게시글은 실질적인 위협"이라며 "위협이 공공연하게 허용되는 게 현재 우리 SNS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플랫폼 사업자들이 내부 가이드라인 등 규정을 강화하고, 일차적으로 (이같은 글을) 삭제하고 차단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행 의사가 없더라도 위해나 협박 게시글을 올리는 것은 분명한 범죄행위라며 끝까지 추적하여 엄정하게 처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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