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혁신위원장을 사퇴하고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안철수 혁신위원회'가 출항도 전에 난파하면서 국민의힘의 쇄신 과업이 차기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혁신위원장이었던 안 의원(4선)이 '혁신위로는 혁신 불가' 진단을 내리며 당대표 선거 출마를 전격 선언했고, 당권 주자들이 하나둘씩 등판하면서 전당대회가 혁신안을 겨루는 '진짜 무대'가 될 것란 전망이다.
당 안팎에선 뜻하지 않은
혁신위 좌초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내부 쇄신의 필요성을 더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을 향한 특검 수사가 쇄신 목소리에 힘을 더욱 실어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혁신 적임자를 자처하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자칫 계파 갈등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안철수 사퇴로 '혁신 전당대회'로 중심추 옮겨져
한동안 혁신위로 쏠리는 듯했던 스포트라이트를 전당대회로 옮긴 인물은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던 안 의원이다.
안 의원이 위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던진 일성은 "혁신 당 대표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애초 전당대회 불출마를 결심했던 이유가 '전권 혁신위'였는데 판을 짜려고 막상 들어가 보니 자신이 생각하는 혁신위 인선조차 어려웠다는 것이 안 의원의 말이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쌍권'(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해 '출당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달라는 안 의원 요구를 거절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연을 끊지 못한 당 내 구(舊) 주류에 책임을 물어야만 쇄신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안 의원의 주장이다. 이 작업이 현 지도부에서 막힌 만큼
이제는 본인이 당권을 쥐고 직접 '칼을 들겠다'는 것이다.
지도부는 이르면 이번 주에 후임 위원장 인선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김빠진' 혁신위보다는 '혁신 전당대회'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초 비대위가 못 받은 혁신위의 활동 기한이 8월 말까지로 두 달도 채 안 된다는 점 또한 전당대회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쌍권과 한남동 그들…당권주자들, 인적청산 주도권 싸움
'혁신'의 적임자가 누구냐를 둔 기싸움도 본격화되고 있다.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한 6선의 조경태 의원도 인적 청산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참전했다. 조 의원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난 1월 윤 전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한남동 관저로 몰려간 45명의 의원들"을 콕 집어 "청산 대상이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지키기에 동참한 범친윤(친윤석열)계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조 의원은 "그분들의 뼈저린 반성과 대국민 사과, 2선 후퇴 등이 왜 안 이뤄지는지 잘 모르겠다"며
"일부 핵심인 분들은 정계 은퇴까지 선언(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과거의 쌍권 지도부를 특정한 안 의원보다 한 발 더 나간 셈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권 싸움에 나설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한 전 대표는 '친윤 구태정치 청산'을 주장해온 찬탄(탄핵 찬성)파란 점에서 안 의원과 혁신 이미지가 일부 겹친다. 이 때문에
안 의원의 공격적 전당대회 등판이 오히려 한 전 대표의 결심을 유도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한 김문수 전 대선 후보 역시 '당이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특검 수사'도 쇄신 목소리에 힘 싣나…계파갈등 우려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월 26일 서울 도봉구 방학사거리에서 열린 '노원·도봉·강북 집중유세'에서 한동훈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8월 중하순 개최 예정인 전당대회 자칫 당의 내홍만 심화시킬 거란 우려도 나온다. 대선 경선 국면에서부터 지속된 계파 간 다툼이 격화될 거라는 관측이다.
원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되는 안 의원이 김 전 후보와 한 전 대표의 동반 출마를 앞장서 권유한 점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안 의원은 "국민의힘이 식료품 가게도 아닌데, 대선 이후 한달 내내 저울질 기사만 반복되고 있다"며
"두 분 모두 과감하게 전당대회 출마선언을 하시고, 당의 혁신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자"고 촉구했다. 혁신위 사퇴로 띄운 혁신 이미지를 선점하면서 전당대회 레이스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서서히 조여오는 특검 수사망을 이유로 들며 지금이라도 당이 스스로 정화에 나서야 정상적 전당대회를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김건희 특검팀은 전날 윤상현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에 연루된 김선교 의원도 출국 금지됐다.
친한(친한동훈)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앞으로 친윤은 수사를 받든, 여론의 뭇매를 맞든 갈수록 궁지에 몰릴 것이다. 그나마 자체 정화를 하는 것이 친윤그룹의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할 유일한 방법"이라며 친윤계의 자발적 2선 후퇴를 주장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내각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원내대표가 여당에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한 것이 꼭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 같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