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제공·박종민 기자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부터 비상계엄을 언급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2·3 내란 사태 전까지 계엄은 1979년 이후 선포되지 않는 등 사실상 사문화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계엄에 관해 잘 아는 군 관련 인사가 윤 전 대통령에게 처음 계엄을 제안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윤 전 대통령과 가장 먼저 계엄에 관해 논의한 인물을 찾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1979년 이후 없었던 계엄…尹은 왜 '정국 돌파' 수단으로 언급했나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처음 비상계엄을 정국 타개의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게 된 시점을 추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2022년 12월 국민의힘 지도부와 저녁 식사를 하며 계엄 선포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증언의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관련기사: [단독]尹 3년 전 "총살당해도 싹쓸이" 발언…특검 수사 선상에)당시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상대권'을 거론했다는 게 증언 내용이다. 비상대권은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이 보유하던 권한이다. 민주화 이후 제정된 제6공화국 헌법에선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 77조에서 규정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비상대권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계엄 역시 현행 법 체계에선 다소 낯선 개념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마지막으로 계엄이 선포된 것은 지난 1979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건이 발생하자 이른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계엄을 선포했다. 신군부는 계엄 선포 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없었다. 27년간 검사로 근무한 윤 전 대통령 역시 계엄 사건은 직접 처리해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이 대학 재학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선 때 측근으로 급부상한 김용현…尹과 정국 논의했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국회사진취재단사실상 사문화된 권한을 윤 전 대통령이 '내가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인데, 윤 전 대통령 스스로 생각해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정국 상황을 논의하던 주변 인물로부터 제안받은 것 아니냐는 취지다.
특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과 정국 타개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당시 김 전 장관 주도로 예비역 장성 100여명이 참여한 지지단체인 '국민과 함께 하는 국방포럼'이 꾸려졌다. 군에 인맥이 없던 윤 전 대통령으로선 김 전 장관이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 캠프에 합류해 군 관련 정책 개발에 참여했다. 비록 윤석열 정부 초반 그는 대통령경호처장이었지만, 윤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했던 군 관련 인사 중 하나였다.
(관련기사: 김용현 사람들 들여다보는 내란특검…'계엄 비선 세력' 찾나)기무사 계엄 문건 생산 당시 軍작전 총괄 김용현…尹에 제안 가능성은
이처럼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김 전 장관이 계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은 있다.
12·3 계엄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작성된 2017년 김 전 장관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합참 작전본부장은 군의 작전을 총괄하는 보직이다. 계엄을 선포한다면 합참 작전본부장의 관여가 불가피하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서도 합참 작전본부장은 핵심 인원으로 거론된다. 문건은 '계엄 선포시 주요 고려사항'으로 "국방부 장관이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계엄 종류와 지역, 계엄사령관 임명을 검토한다"고 언급한다. 비상대책회의에 참여하는 인원에 합참 작전본부장이 포함돼 있다.
김 전 장관이 당시에는 기무사의 계엄 계획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 전 장관이 12·3 내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무사 문건을 참고한 정황은 다수 드러난 바 있다.
(관련기사: 8년 전 기무사 문건…12·3 내란 수사에 다시 소환된 이유는) 尹 '계엄 구상' 언제 처음했나…특검, 논의 대상·시점 살핀다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특검은 김 전 장관을 비롯한 윤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을 조사해 그가 언제부터 계엄 선포를 구상하게 됐는지 규명할 계획이다. 처음 계엄 선포 가능성을 언급한 시점을 특정해 당시 누구와 그러한 논의를 했는지, 실제 계엄 선포를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닌지 확인할 방침이다.
박지영 특검보는 "내란특검의 중요한 의미가 진상 규명"이라며 "진상 규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이 도대체 비상계엄을 언제부터 생각했느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에 대한) 생각이 있었으면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언제부터 모의했고 누구와 협의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