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밖 노동' 보호 패키지 입법…노동절 목표로 속도전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 0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근로기준법 개정해 '노동자 추정제' 도입, 입증 책임 사측 전환
계약 형식 불문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 추진
정부, 5월 1일 노동절까지 패키지 입법 완료 목표
노동계 "선언에 그칠 우려…근로자 정의부터 넓혀야"

연합뉴스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이른바 '가짜 3.3'과 '무늬만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는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추정제'를 핵심으로 한 패키지 입법을 추진한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증가로 전통적인 노동관계법의 테두리 밖에 놓인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무늬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왔다.

근기법상 '노동자 추정제' 도입…민사 분쟁에만 국한

20일 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노동자 추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즉, 노무제공자는 이 법과 관련한 분쟁 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신설된다.

이는 노동 사건에서의 고질적인 '정보 편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그동안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종속적인 근로자임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타인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별도의 판단 없이 일단 근로자로 간주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추정은 입증 책임의 전환을 의미한다"며 "노무제공자가 자신들의 지위에 대해 주장을 하면, 이에 대한 반증은 상대방(노무수령자)이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즉, 사용자가 해당 인원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노동법상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다만 이번에 도입되는 노동자 추정제는 형사 처벌과 직결되는 사건보다는 임금·퇴직금·각종 수당 청구 등 민사적 분쟁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형사 사건은 기본적으로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찰에 입증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입증 책임을 노무수령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추정제는 민법상 화해의 효력을 갖는 분쟁 조정이나 민사 소송을 중심으로 작동하게 된다.

또한, 추정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실질적 잣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존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되, 입증의 순서만을 조정해 노동 약자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본질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별도의 새로운 판정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에서 말하는 판정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추정제의 민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청 신고 사건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직권 조사 권한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근로감독관은 노무제공자가 신고한 경우 근로자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노무수령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노무수령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통해 감독관은 사용자가 보유한 계약서, 출퇴근 정보 등을 강제성 있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자료 제출 거부 시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국세청의 소득 정보 등을 확인해 '가짜 3.3' 여부를 보다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다. 또한, 사안이 복잡한 경우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근로자성 판단 자문위원회'를 지방관서에 설치해 판단의 객관성과 수용성을 높일 방침이다.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 제정 추진…"개별법 변화 뒤따를 것"

근로자 추정제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사각지대를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 도입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헌법상 근로자가 과연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만을 의미하는 거냐, 그게 아니다"라며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안은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인간 존엄성 존중, 안전하게 일할 권리, 공정한 계약 체결 등 8대 권리를 명시한다. 다만 개별법이 우선 적용되는 구조인 만큼 선언적 성격에 그친다는 한계도 함께 지닌다.

정부는 이 기본법이 향후 산업안전보건법, 사회보험법 등 개별 노동관계법령을 제·개정할 때 지침이 되는 상위 규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기본법의 취지를 개별법이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법이 만들어지면 그 정신대로 모든 개별법들의 개정 작업이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패키지 입법을 올해 5월 1일 노동절까지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3~4월 국회 논의에 집중하는 한편, 전문가 토론회와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잇따라 열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입법은 파편적인 법 개정을 넘어 경제·사회적 변화와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적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특히 노동자 추정제 도입을 통해 오분류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 분쟁 전반의 공정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실효성 부족…선언에 그칠 우려"

배달 오토바이. 연합뉴스배달 오토바이. 연합뉴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하고, 오히려 노동 약자 보호를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신하나 위원장은 "지금은 근로자성 추정만이 아니라 노동자성 자체의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노동자 추정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존 근로자성 정의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근로자성 확대 대신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이라는 별도의 법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결국 노동자를 갈라치는 결과를 낳고, 새로운 오분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은 선언적 규정에 그쳐 실제 보호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 위원장은 "불공정 계약 문제는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등 기본 법 체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며, 노동 제공자를 새로운 신분으로 규정해 보호를 선언하는 방식 자체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5월 입법을 앞두고 노동부의 추진 의지와 노동계의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실효성 있는 보호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