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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色 여름휴가, 서울 속 이슬람·아프리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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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발견] 서울 속 세계여행② - 이슬람, 아프리카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정점을 향해 가는 여름휴가철, 먼 곳이 아닌 서울로 세계여행을 떠나보자. 서울 속 외국인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골목들 그리고 그곳의 음식을 탐방하는 새로운 여행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다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새로운 현지 음식들을 만끽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단언컨대 지난해 지출한 여름휴가 여행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서울 그리고 일상의 공간을 재발견하는 신선함도 누리게 될 것이다.

지난번에는 서울 동촌 곳곳에 있는 중앙아시아, 네팔, 필리핀 골목을 걸으며 현지 음식도 함께 즐기는 여행을 떠나봤다. 이번에 떠날 곳은 서울 속 이슬람과 아프리카다. 서울 남촌 아래 이태원에 자리 잡은 이슬람과 아프리카 거리로 함께 나서보자.

◈ 이태원, '미군의 거리'에서 '이슬람, 아프리카 등 다국적 거리'로 변신하기까지

외국인 다문화 거리의 1번지의 원조격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곳은 1950년대 이후 용산 미군기지 옆 유흥가로서 미군들의 문화소비적 해방구였다. '양공주'들에게는 한국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으며, 일부 시민들에게는 미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선망의 장소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수시로 벌어지는 미군범죄로 위험한 느낌을 주는 낯선 동네였다.

우리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대중음악인들에게는, 미군 점령지 성격을 띠면서 일종의 정치적, 문화적 '치외법권' 지대가 된 이태원이 도리어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고마운 무대이기도 했다.

 

이런 이태원이 지구촌 거리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 속 미국 문화의 거리 이태원은 자연스레 외국인들에게 쇼핑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1997년에는 서울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이런 이태원에 2000년대 들어 변화가 생겼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되고, 9·11 테러 이후 미군들의 외출도 엄격히 제한되면서 이태원에 미군들이 크게 줄었다.

뿐만 아니라 동대문 의류 상권이 뜨고, 외국인의 유흥 명소들도 홍대 앞과 신촌에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 상대적으로 이태원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존 상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이태원에 새롭게 세력을 형성한 이들이 이슬람과 아프리카 노동자 및 상인들이다.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지의 이슬람권의 외국인 노동자, 소규모 보따리 무역상, 외국어 강사 등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이렇게 미군 위주의 거리에서 명실상부 다국적 거리로 거듭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주류 대중문화공간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하위문화, 실험문화가 형성된 곳도 이곳 이태원이다.

◈ 이슬람 - 중동, 인도네시아, 터키

서울에 단 하나뿐인 이슬람 사원, 바로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이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소방서 네거리를 만나 우회전해서 올라가면 '할랄(halal) 음식'을 파는 아랍 레스토랑과 여행사 등 이슬람 거리가 나온다.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서울중앙성원은 이슬람교의 국내 허브이자 이슬람권 외국인들의 핵심 커뮤니티 장소다. 이태원에 이슬람 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곳 언덕에 세워진 서울중앙성원이다.

예배실 안은 이슬람교인이 아니면 들어가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예배실 밖의 성원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은 석유값 폭등과 중동 건설 붐으로 이슬람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던 시기, 정부가 이곳에 5000㎡ 부지를 제공하면서 만들어졌다.

건축과 운영 경비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진출해 있던 중동국가들이 지원했고 1976년 완성됐다.

90년대 후반부터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중동에서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 근로자들과 상인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들이 이슬람 성원으로 몰려들었다. 이태원 이슬람 거리는 이렇게 형성됐다.

이곳 주변에는 현재 약 5백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 휴일인 '주마(예배)'가 열리는 금요일에는 7백~8백명의 무슬림들이 이 일대에 모인다.

특히 보광초등학교에서 이슬람 성원을 지나 제일기획 뒤편까지 이어지는 이슬람 거리는 모슬림의 향취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슬람 마트, 베이커리, 식당, 이슬람 종교전문서점 등이 늘어서 있고, 수염을 기른 남자와 히잡을 쓴 여성들이 그곳을 드나든다.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잡은 고기만 판다는 뜻의 '할랄(Halal)'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식당과 정육점들에서는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풍겨난다.

이태원에 모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은 40개가 넘는다. 우리가 잘 맛보지 못한 이슬람권 음식뿐 아니라 종종 서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터키 케밥 요리점들이 이곳 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방서 앞 네거리에서는 아이스박스에 케밥을 넣고 다니며 파는 레바논 청년도 만날 수 있다. 이슬람 사원 앞 아랍 과자점에서는 현대 유럽 과자문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랍의 다양한 과자들도 맛볼 수 있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이슬람 할랄음식이다. 여기서 할랄(halal)은 '허용된'이라는 뜻. 할랄 음식(halala food)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 무슬림이 먹어도 되는 것으로 분류한 음식이다.

모든 식물성 음식과 해산물 음식, 벌꿀, 우유, 그리고 이슬람식 도축 방법에 따라 도축된 육류 고기 등이 여기 속한다. 여기서 이슬람식 도축 방법이란 동물을 잡을 때 머리가 메카를 향하도록 한 뒤, 기도문을 외우고,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를 외치면서 목에 있는 급소를 단칼에 내치려 동물의 숨이 순식간에 끊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이슬람 율법에서 금지하는 음식은 하람 음식(haram food)라고 하는데, 술, 돼지고기, 개, 고양이, 자연사한 동물, 잔인한 방법에 의해 도살된 동물이 여기 속한다.

이렇게 엄격한 종교적 율법에 따라 생산 관리되기 때문에 식품에 대한 안전성과 신선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 할랄푸드는 종교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슬람권은 동남아시아, 중동, 터키, 아프리카 등 매우 넓은 문화 권역을 포괄하고 있으니, 이슬람 음식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인도네시아인이 요리하고 서빙하는 'Siti Sarah'(이태원동 137-48. 02-796-8515~6), 이라크인이 운영하고 이라크, 시리아인 등이 요리하는 'Dubai Restaurant'(이태원1동 127-22. 02-798-9277), 터키인이 운영하고 요리하는 터키 음식점 'Pasha'(이태원로 188-1. 02-766-8445) 등에서 이슬람권 여러 나라들의 요리를 만끽해보자.

 

인도네시아 음식점 'Siti Sarah'는 보통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넓은 분식집이나 김밥 전문집 정도의 규모로, 식당 내외부가 깔끔하다.

음식도 인도네시아 고유의 메뉴가 나오는데, 이 메뉴들 가운데 'Nasi Goreng'이라는 인도네시아식 볶음밥(8000원), 'Mie Goreng'이라는 인도네시아식 볶음라면(9000원), 그리고 'Rendang Sapi'라는 인도네시아식 소고기 요리(9000원)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커리 향이 섞인 향신료가 베어있으면서 매콤하고 약간 새콤달달한 소스에 익힌 인도네시아 불고기는 스테이크를 두툼하게 조각조각 잘라낸 듯한 두께와 크기로 한번에 잡아끄는 강한 맛이 인상적이다. 밥에 얹은 가루와 빵의 맛도 우리가 잘 먹어본 적 없는 독특한 고소함이 있다.

 

중동 음식점 'Dubai Restaurant'은 꽤 크고 넓은 레스토랑의 분위기다.

이슬람 음식이 그렇듯, 돼지고기를 제외한 소, 양, 닭고기 요리가 메인 요리로 닭고기 요리는 15000원, 양고기 스테이크는 25000원, 소고기와 양고기가 섞인 스테이크는 30000원이다. 비싼 가격에 걱정하지 말자. 중동 요리로 꼭 배를 불리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면, 이런 메인 요리가 아닌 수프와 샐러드, 전채 요리로 메뉴판에 분류된 요리를 선택해서 먹으면 된다.

이 모든 요리들이 메인요리 주문을 하지 않고도 단품 주문이 가능하다. 추천할 만한 메뉴는 중동 음식에서 우리 메주콩처럼 음식 곳곳에 쓰이는 '병아리콩' 음식이다. 중동식 된장국이라고 할 만한 'Lentil soup'(3300원), 난(1100원)에 병아리콩과 타히니 소스, 레몬과 올리브오일로 만든 'Hummus'(6600원)을 찍어먹는 요리, 병아리콩과 파슬리, 향신료로 만든 'Falafel' 등이다.

'Lentil soup'은 커리 색을 띠면서도 커리와는 다르게 달지 않고 시큼하며 은근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묽은 수프로, 왠지 모르는 친숙한 맛을 풍긴다. 'Hummus'는 부드러우면서도 이전에 거의 체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식감에 질리지 않은 고소한 풍미를 지녔다. 난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배가 부를 때까지 먹게 되는 매력이 있다.

 



◈ 아프리카 - 나이지리아, 남아공, 모로코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뒤로 돌아 조금 걸으면 만나는 이태원 1동 이화시장길은 아프리카 이주민이 많이 살아서 '아프리카 거리'로 불린다.

이곳 아프리카 거리의 주인공은 나이지리아인들이다. 이슬람 거리가 생기면서 아프리카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나이지리아인들도 이곳에 최근 터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 600명 이상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옷을 사서 나이지리아로 수출하는 의류, 원단 상인들이 많고, 그밖에 자동차, 가죽 무역에 종사하거나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도 있다.

나이지리아인들이 많은 이화시장길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인들이 모여 있는 우사단로 14길도 또 하나의 작은 아프리카 거리다. 이 거리가 있는 이태원 1동을 포함해 이태원 전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국적 구민은 700명이 넘고, 경기도 일대 공장에서 일을 하다 주말에 이태원을 찾는 이들을 더하면 그 수는 1천여명을 넘는다.

거리 주변에는 아프리카인을 위한 교회만 7개나 된다. 가장 규모가 큰 '마운틴 오브 파이어(Mountain of Fire)'나 '워드 오브 페이스(Word of Faith)' 교회에는 예배시간별로 이주민 70∼80명이 모인다.

서울 아니 우리나라 전체에서 아프리카인들과 아프리카 교회, 식당 및 가게들을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 타운은 이곳이 유일하다. 서울 속 작은 아프리카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는 곳이 이곳이다.

아프리카 거리 골목의 한 낡은 상가 건물은 2층 전체가 아프리카인들이 운영하는 옷가게와 구둣방, 레게머리 전문 미용실, 식료품점, 식당들로 채워져있다. 한명의 백인도 한국인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국적인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눈다. 건물 게시판에 붙어 있는 나이지리아와 가나 커뮤니티의 행사나 회의 소식들은 이곳이 이들의 사랑방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건물 식당 'Happy Home Restaurant'(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27-15 2층, 2-797-3185)의 이름이 '해피홈'인 것도 이곳이 사랑방 같은 안식처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닐까. 이 식당은 우리가 보통 보는 건물 2층의 넓은 중국집과 그 규모가 비슷하다. 나이지리아 무역사업가가 한국을 오가다 2003년 부인과 함께 문을 연 식당이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및 캐리비안 요리가 나오는데, 모든 메뉴가 5천~1만원이다.

대표 메뉴는 쌀가루를 쪄서 죽과 떡 중간 형태로 만든 Yam을 아프리카 수프에 찍어 먹는 것인데, 쌀가루를 갈아 개어서 떡처럼 먹는 Yam은 풀기 없이 미끈하며 밍밍한 맛으로 손으로 떼어먹는 재미가 있다. 아프리카식 볶음밥과 튀긴 플랜테인(바나나와 비슷)도 즐길 만하다.

 

이 식당에서 우리가 별미로 즐길 또 하나의 메뉴는 아프리카 순대국이라 불릴만한 'Intestine Pepper Soup'다. 굉장히 진한 고기 국물에 짭짤하고 얼큰한 맛이 녹아있어서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매우 좋아할 메뉴. 곱창과 간 등 내장이 듬뿍 들었는데, 냄새는 별로 나지 않는다. 5000원 가격에 아주 진한 순대국 작은 한그릇을 먹는 느낌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양동이와 물비누를 식탁에 올려준다. 손 씻고 손으로 먹는 것이 이곳 아프리카인들 식사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오면 포크와 스푼을 준다. 기왕 식당에 들렀다면, 아프리카인들의 방식으로 식사를 즐겨보자.

이 식당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아프리카 음식을 즐기고 싶다면, 모로코 식당 '마라케쉬 나이트'(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31-3 2층, 02-795-9441)도 가볼 만하다.

 

주한 모로코대사관 수석요리사 출신 사장이 가족과 함께 2007년 문을 연 식당이다. 전채 요리부터 메인 요리까지 정통 모로코 음식만을 서빙한다. 1만5000원~3만원 가량. 양고기 케밥과 닭고기 케밥을 2만원에 즐길 수 있다. 모로코식 물담배도 15000원에 1~2시간 정도 즐길 수 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진 뷔페 메뉴를 제공한다. 뷔페 가격은 18700원이다. 이곳은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이라 손님 중 한국인이 70% 정도를 차지한다.

북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음식을 비교해봐도 좋다. 북아프리카 튀니지 음식이 나오는 '그릴 커리펍'(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225-41, 070-7644-9440)에서 튀니지 대표 양고기 요리 ‘꾸스꾸스’를 남아프리카 남아공 식당 'Braii Republic'(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63-4, 070-8879-1967)의 양고기 스테이크(한 접시 두 조각에 18000원)와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태원 중심도로를 중심으로 길 건너편 해밀턴호텔 뒤쪽에 유럽과 중남미 고급 식당들이 있는 골목이 깨끗하고 널찍한 데 비해 아프리카 거리는 아직은 협소하고 다소 낙후된 모습이다.

이런 골목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듯, 아프리카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지역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아직 이 땅의 편견 속에 철저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근처의 중동 식당만 해도 서양인, 한국인이 많이 보이지만, 아프리카 거리 골목의 식당에는 흑인들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 치안이 매우 안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위험한 거리로 취급을 하거나, 범죄 사건이 터지면 아프리카 출신이라며 의심을 받는다. 버스를 타도 같이 자리에 앉기를 주저하며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따돌리는 등의 일이 흔하다고 한다.

심지어, 재개발로 아프리카 커뮤니티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뉴욕과 같은 다문화도시의 자양분을 없애고 이태원이 갖는 문화 다양성 시험대로서의 장소적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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