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화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로맨스도 드라마의 큰 축이 되어야 하는 줄거리의 부재에는 백약이 무효다. 톱스타 문근영, 이상윤도 별무신통이다.
MBC ‘불의 여신 정이’가 급기야 월화극 꼴찌로 곤두박질했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0일 방송된 ‘불의 여신 정이’는 7.8%의 전국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SBS ‘황금의 제국’은 10.7%, KBS 2TV ‘굿닥터’는 18.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 월화사극이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최저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근 2년 내 처음이다. MBC는 지난 2011년 방송된 ‘빛과 그림자’ 이래 ‘골든타임’, ‘마의’, ‘구가의서’ 등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월화극 불패신화를 기록해 왔다. ‘불의 여신 정이’가 2년여 간 이어온 MBC월화극 불패 신화를 깬 작품이 된 셈이다.
‘불의 여신 정이’의 부진은 갈등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선악구조가 뚜렷한 캐릭터의 배치를 통해 갈등이 반복되면서 흥미를 유발한다. 하지만 ‘불의 여신 정이’의 주인공들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작진은 이들이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치면서 갈등이 증발했다.
앞서 ‘불의 여신 정이’의 주인공 정이 역의 문근영은 기자들과 만남에서 “감독님이 모든 주인공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다 보니까 갈등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이유를 설명했으니 서서히 갈등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의 여신 정이’의 연출자는 과거 명드라마로 꼽혔던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한 박성수PD. 연출자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사극판 ‘네 멋대로 해라’를 연상해 볼 법도 하지만 성질 급한 시청자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든 주인공들이 정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캔디 스토리 역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다. 분명 이상윤이 연기하는 광해는 이제까지 보여줬던 그 어떤 광해보다 로맨틱하고 김범은 김태도 역을 통해 테리우스같은 남성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삼각관계와 더불어 모든 출연진이 정이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스토리는 지루한 감을 더한다. 오죽하면 “정이는 캔디, 광해는 안소니, 태도는 테리우스”라는 지적이 일 정도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큰 줄기인 ‘도자기 만드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신분제가 엄격한 조선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사기장의 자리에 오른 실존인물 유정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기획의도와 달리 도자기 빚는 장면은 드문드문 등장한다.
‘대장금’이 국민 드라마를 넘어 한류드라마로 성장한 이유는 요리를 향한 장금의 열정이 드라마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났기 때문. 하지만 지금 ‘불의 여신 정이’는 정이의 로맨스에만 치중할 뿐 사기장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은 실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