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배창호 영화감독(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콤비작업)
~ 노래 ~
너무나 익숙한 노래죠. 이장희가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듣고 계시는데, 영화 <별들의 고향="">의 삽입이 돼서 크게 인기를 얻었던 이 노래죠. 이 영화의 원작자, 영원한 청년 작가, 한국문학계의 거장 최인호 작가가 어제 저녁 향년 예순 여덟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 동안 침샘암과 치열하게 싸워왔는데요. 그 5년 투병기간 중에도 작품을 여럿 남겼죠. 그래서 청년작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아침인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 최인호 작가의 흔적을 함께 더듬어 보겠습니다. 1980년대 최인호 작가와 함께 호흡 맞춰서 영화 5편이나 연출한 분이세요. 배창호 감독, 연결이 돼 있습니다.
故 최인호 작가 빈소 (사진=송은석 기자)
◇ 김현정> 어떻게, 빈소는 다녀오셨어요?
◆ 배창호> 네, 어제 밤에 갑자기 소식을 듣고 찾아뵀습니다.
◇ 김현정> 부지런히 다녀오셨네요. 영정사진으로 뵙고 오신 거예요.
◆ 배창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 배창호> 밝게 웃으시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 김현정> 두 분 가장 최근에는 언제 만나셨어요?
◆ 배창호> 지난 가을 무렵에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만났습니다.
◇ 김현정> 그때 모습도 병색이 짙으시던가요?
◆ 배창호> 육체적으로는 좀 쇠약하셨지만,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셔서 그 영혼은, 마음은 굉장히 맑고 창작의욕이 굉장히 불타셨어요, 그 당시는.
◇ 김현정> 그 당시 창작의욕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을 하시다 가신 거죠?
◆ 배창호> 물론 최근에는 병세가 위중하실 때는 직접 쓰진 못하셨겠지만 직전까지는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야말로 손에 연필 잡을 힘이 있을 때까지 글을 쓰다간 청년작가, 최인호 선생. 어제 빈소에 영화계 인사들도 많이 다녀갔다고요?
◆ 배창호> 어제 저녁 7시쯤 영면하셔서 갑작스럽게 빈소가 차려져서 많이는 아니지만 가까운 분들, 소식들은 분들이 급히 발길을 돌려서 오셨더라고요.
◇ 김현정> 배창호 감독도 그렇고 영화배우 안성기 씨도 모습이 보이고. 아마 소설가가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영화계 인사들이 문상 오는 경우도 거의 없을 거예요.
◆ 배창호> 70년대부터 최인호 형께서 문단에 큰 새로운 별이셨지만 시나리오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죠.
◇ 김현정> 그러니까요. 이렇게 자기 소설이 영화화가 된 작가로서는 최인호 작가가 최다 작품 가지고 계신 것 맞죠.
◆ 배창호> 그럴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기록상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배창호 감독과 최인호 작가.
최인호 작가 (유튜브 동영상 캡처)
◆ 배창호> 저희는 인연이 좀 오래됐는데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최인호 형은 이미 문단에 등단을 하신 4학년 복학생이셨어요.
◇ 김현정> 최인호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등단을 하셨잖아요, 최연소 등단 작가.
◆ 배창호> 네, 문단에서 이미 <별들의 고향="">으로 주목을 받은 작가였었습니다, 그 당시에. 늙은 복학생이셨죠. 제 대학교 선배,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연극부 선배이시기도 해서 제가 연극 공연하는 것도 보시고 격려도 하시고,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 김현정> 그러다가 최인호 선생의 작품을 어떻게 영화화 하게 됐습니까?
◆ 배창호> 제가 영화계에 뛰어들기 위해서 인호 형을 찾아뵙고 졸라댔죠. 처음에는 좀 제가 경영학과 출신이니까 주저하시다가 이장호 감독님을 소개해 주셨고 제가 영화계에 입문하게 길을 터 주셨죠.
◇ 김현정> 그래서 어떤 작품을 같이 하신 거죠?
◆ 배창호> 작품은 83년도에 <적도의 꽃="">이라는 영화로 시작을 했고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황진이>, <안녕하세요 하나님=""> 이 다섯 작품을 같이 작업했습니다.
◇ 김현정> 많이 하셨네요. 제가 듣기로는 시나리오 작업도 두 분이 같이 하면서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하셨다면서요?
◆ 배창호> 작품을 할 때는 그랬습니다.
◇ 김현정> 어떤 분이셨어요? 가까이서 보는 생활인 최인호 작가는.
◆ 배창호> 소설가 유현정 선생이 그분에게 온산, 따뜻한 ‘온’하고 뫼 ‘산’자 온산이라는 호를 지어드렸는데. 굉장히 따뜻한 분이에요. 속에 열정도 가득 차고. 유머도 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많이 있었고. 그리고 영화를 할 때는 형, 아우 하는 것 없이 격의 없이 감독과 작가로서 엄격하게 구분을 하시면서 그야말로 동지처럼 같이 똘똘 뭉쳐서 작업을 했던 그런 기억이 많이 납니다.
◇ 김현정> 온산, 따뜻한 분. 이분하면 청년작가라는 이름이 늘 따라다니죠. 그 이유가 1974년 청년문학선언도 하셨어요. ‘고전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돼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들 욕하기 전에 한 번 가서 밤을 새워보라.’ 이런 패기 있는 말씀. 감각이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 배창호> 그 분의 소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게 시각적으로 금방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감각적인 비유라든지 언어를 많이 구사하셨죠. 그리고 구성이, 이 분이 영화를 이전부터 좋아하셔서 영화적 구성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독자로 하여금 집중하게끔 합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그래서 상당히 새로운 소설로, 기법으로 주목을 받았죠.
◇ 김현정> 맞아요. 어떻게 보면 이분의 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영화계 굉장히 잘 되고 있는데 그 바탕이 된 걸 수도 있어요.
◆ 배창호> 그렇게 얘기할 수 있죠. 대표작인 <바보들의 행진="">, 청춘 영화로 자리 잡고 있는 <고래 사냥="">, 아까 말씀드린 그런 작품들이 많은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죠.
◇ 김현정> 그런데 너무 일찍 가셨어요. 예순 여덟밖에 안되셨습니다.
◆ 배창호> 안타깝죠. 그 분이 저한테도 말씀하시고 주위에도 밝히셨듯이 마지막 투병생활 5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즐거운 고통의 축제와 같은 나날이었다.
◇ 김현정> 즐거운 고통? 암 투병 환자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까?
◆ 배창호> 고통을 창작의욕으로 승화시켜서 또 작품을, 그 와중에서도 두 편인가 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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