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중동의 세력 저울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30여년 핵 사태로 고립과 경제난을 겪던 이란이 국력 부상의 기회를 쥐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 지역 전통 강호를 억누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등 이란의 적수들은 '맹수가 우리에서 풀려났다'면서 울분을 내비친다. 중동 국가들이 이란을 견제하고자 새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 34년 대치 끝에 회생의 길 열어
이번 핵협상 타결은 이란과 미국의 장기 대치를 끝낸 성과로 평가된다. 이란 핵 사태는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34년이나 계속돼 기간 면에서 미국과 옛 소련 진영의 냉전과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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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핵개발을 중단·축소하는 대가로 경제 제재가 완화돼 당장 만성 실업난과 물가급등에 찌든 나라 살림에 숨통이 트였다.
협상 이행 실적에 따라 석유수출 금지 같은 핵심 제재도 풀 수 있게 돼 국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은 2011년 기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생산 규모가 2위인 만큼 제재 철폐로 제값에 석유를 팔 게 되면 '오일 달러' 혜택이 크다.
이처럼 이란이 회생의 동아줄을 움켜잡은 사이 중동의 전통 강호인 페르시아만 산유국들(걸프국)은 걱정의 늪에 빠졌다.
자신들의 후원자였던 미국이 '고립된 말썽꾸러기'였던 이란과 급격히 가까워지면 이란 견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슬람 다수파인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는 특히 표정이 어둡다.
◇ '중동에서 이란 활개' 계기 되나
소수 시아파의 대표주자인 이란은 시리아, 예멘, 바레인 등 시아파 정권을 후원하며 수니파 중심의 중동 정세를 흔들어 왔다. 이란의 핵무장은 이 때문에 사우디에 최대 걱정거리다.
이란이 협정을 충실히 지켜 핵무기를 포기해도 문제는 크다. 제재 완화로 얻은 달러로 이란이 전통적 군사력을 강화해 국외 시아파 지원을 늘릴 수 있다.
게다가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 예전 중동 강호들이 정치적 혼란과 내전 등으로 최근 세력이 약해진 것도 이란 득세를 도울 수 있다는 평가다.
사우디의 정치 평론가인 자말 카쇼기는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번 협상 타결을 중동에서 마음껏 행동해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당국은 협상 타결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침묵을 지켰다. 반면 아랍에미리트 등 4개 걸프국, 이집트, 터키는 '중동의 긴장을 해결할 계기'라면서 협상 결과를 조심스럽게 지지하는 성명을 내놨다.
'제재 완화 특수'가 예상되는 이란과의 교역 관계와 협상을 이끈 우방 미국의 존재 등을 의식한 조처로 풀이된다.
◇ 이스라엘 격분…이란 대항마 협력체 등장하나
이란의 최대 적수인 이스라엘은 협상이 '역사적 실수'라면서 격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장 의혹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한 국가로 수차례 이란 내 주요 핵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스라엘도 현실적으로 대(對) 이란 강경노선에 제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동맹인 미국이 이번 핵협상 타결을 중동에서 간만에 달성한 외교 성과로 보고 이란 포용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 달래기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란 문제 해법에 관한 즉각적인 논의를 제안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란의 급부상을 우려한 사우디 등 걸프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안보 협력체를 만들어 세력 균형을 꾀할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 전망도 있다.
협상을 주도한 현 이란 행정부가 온건 중도 성형이기는 해도 혁명 수비대와 정보 당국 등 그 외 정권 핵심은 국외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강경파인 만큼 중동의 위기감이 결집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애초 앙숙이지만 이란 핵협상 과정에서는 함께 반(反)이란 공세를 펴 외신에서 '괴상한 동맹'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안보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협력체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각국이 미국에 이란 견제책을 촉구하는 '각개 전투' 방식으로 외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