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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노무현, 변론 잘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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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 피해자 "영화 세번 보고 세번 울어"

 



- 盧, '이 학생들은 정당하다' 변론해
- 영화 속 고문, 다 받아본 것들
- 어머니가 아들찾는 장면에서 눈물나
- 새해에 문재인 의원과 같이 관람예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12월 27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욱영 (부산 해운대구 구의원, 부림사건 피해자)


◇ 정관용> 요즘 장안의 화제죠. 개봉 8일 만에 35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변호인. 이 영화는 81년에 있었던 부림사건, 부산 학림 사건의 줄임말입니다. 이걸 소재로 하고 있는데요. 이 부림사건의 실제 피해자들도 이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 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실제 피해자 가운데 한 분, 전화 연결해 봅니다. 부산 해운대구의 구의원을 지금 하고 계시네요. 박욱영 의원, 안녕하세요?

◆ 박욱영> 네,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 정관용> 영화 보셨죠?

◆ 박욱영> 네. (웃음) 세 번 봤습니다.

◇ 정관용> 우셨어요?

◆ 박욱영> 네. 뭐, 볼 때마다 울었죠.

◇ 정관용> 세 번 봤는데, 세 번 다 우셨다고요? 그렇게 눈물이 나시던가요?

◆ 박욱영> (웃음) 눈물 나죠.

◇ 정관용>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시던가요?

◆ 박욱영> 처음에는 고문당한 그 모습을 보니까 정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고요. 두 번째 볼 때는 그 어머니가 아들을 찾으러 다니는 그런 모습이 그때 실제로 저희 어머니들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 정관용> 그런 장면들. 고문 받는 장면 보니까 본인이 받았던 고문하고 비슷하던가요?

◆ 박욱영> 네. 다 거기 그 영화에서 나오는 것 저도 다 받아봤습니다.

◇ 정관용> 지금 마지막 5분간의 변론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알려져 있는데. 그 부분도 실제 법정, 그 당시의 법정 모습하고 비슷합니까?

◆ 박욱영> 뭐, 한 8, 90% 비슷하다고 봐야죠.

◇ 정관용> 그래요?

◆ 박욱영> 네.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변호인이 이렇게 하고 피고인들은 그냥 아주 나약하게 나와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피고인들이 정말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했습니다.

◇ 정관용> 영화는 이제 변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다 보니까.

◆ 박욱영> 그렇죠.

◇ 정관용> 상대적으로 피고인들을 좀 왜소하게 그린 모양이군요?

◆ 박욱영>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우리 박욱영 의원이 실제 경험했던 그 사건을 이 영화는 거의 그대로 잘 그려낸 겁니까? 어떻습니까?

◆ 박욱영> 그 정도면 저는 훌륭하다고 봅니다.

◇ 정관용>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어떤 사건이었죠?

◆ 박욱영>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광주사태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우리 부산에서 부마항쟁이 있었죠. 그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그때 무너지게 됐는데. 그렇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나니까 광주는 광주사태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희생을 하고, 그렇게 됐는데. 부산에서는 부마항쟁 때의 어떤 학생들이라든지 시민사회에 있었던 사람들이든지 이렇게 뭐 구속이 되고 한 게 그렇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걸 엮은 것 같아요. 여러 분야에서. 그게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 정관용> 여러 분야라면 우선 대학생들이 많았을 거고요?

◆ 박욱영> 그렇죠. 대학생들이 많고. 그다음에 시민사회 쪽에 양서조합운동을 한다든지 또 YMCA 주로 기독교 쪽에서는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했으니까.

◇ 정관용> 그러니까 대학생, 시민단체 활동가들. 이런 분들을 쭉 조직으로 엮었다 이거죠?

◆ 박욱영> 그러니까 그냥 잡아가서 그냥 연관이 있는 것처럼 다 엮은 거죠.

◇ 정관용> 박욱영 의원께서는 그 당시에 대학생이었습니까?

◆ 박욱영> 저는 졸업을 하고요. 몸이 안 좋아서 좀 놀고 있던 그런 상태였습니다. 군대 가서 수술을 하고 나서.

◇ 정관용> 졸업 후에 군대를 갔다가 몸이 안 좋아서 수술을 하셨어요?

◆ 박욱영> 네.

◇ 정관용> 그러면 의가사제대 비슷하게 하셨네요?

◆ 박욱영> 그렇죠. 의가사제대를 하고 조금 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 정관용> 그러고 계셨는데. 그냥 어느 날 느닷없이 와서 잡아가던가요?

◆ 박욱영> 그렇죠. 1차로 고호석, 이상록 이런 사람들이 열 몇 명이 잡혀갔고요. 그 한 4, 50일 지나서 집에 제가 있는데, 부모님들 하고 아침식사를 하는데 형사들이 와서 대질심문을 해야 된다고 앞에 잡혀간 사람 누구누구 아느냐고 그래서 안다고 그러니까 대질심문을 해야 된다고 이렇게 와 가지고 그냥 택시타자마자 눈 가리고 이렇게 갔죠.

◇ 정관용> 어디로 끌려갔었습니까?

◆ 박욱영> 그때 영화에서는 바닷가로 나오는데 제가 그때 택시에서 눈을 가리고 내렸는데 부산역 바로 뒤편에서 제가 눈을 가린 것을 풀고 군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창밖을 보니까 철도가 이렇게 있더라고요. 철도가 있고 철도의 기차소리도 나고 그래서 그게 제가 알기로는 부산역 뒤편이었다라는 걸로 제가 기억을 하고요. 그다음에 확인을 해 보니까 그게 맞더라고요.

◇ 정관용> 부산역 뒤편에 어떤 건물이었던가요? 그러니까.

◆ 박욱영> 그 건물은 뭐, 그때 당시에 3104라고 대공분실이었는데.

◇ 정관용> 치안본부 대공분실?

◆ 박욱영> 네, 아주 조그마한 건물에 저는 지하실에 수감이 됐었거든요.

◇ 정관용> 그래서 모두 며칠이나 구금당해 계셨던 겁니까?

◆ 박욱영> 저는 한 43일 정도 있었습니다.

◇ 정관용> 최장으로 구금당했던 분은 몇 분이죠?

◆ 박욱영> 송병곤이가 한 60일 조금 넘었다고 그러던데요.

◇ 정관용> 43일 구금당해서 계속 고문당하신 거예요?

◆ 박욱영> 그렇죠. 처음에 갔을 때 가자마자 한 일주일 동안은 그냥 이유도 없이 막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요. 그리고 그때 한 일주일 지나서부터는 취조를 하는데. 이야기가, 자기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안 나오면 물고문도 하고 통닭도 하고 이렇게.

◇ 정관용> 원하는 이야기가 뭐였었습니까, 그러니까.

◆ 박욱영> 그러니까 이제 사회주의 운동을 한 걸로, 이렇게. 이 책이 사회주의 책이 맞지?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 정관용> 사회주의 운동을...

◆ 박욱영> 아니라고 그러면 맞고.

◇ 정관용> 사회주의 운동을 획책한 일개 대단위 조직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가요?

◆ 박욱영> 네. 그러니까 저는 야학을 했는데, 야학을 하면서 노동자들한테 그런 의식화 교육을 하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

◇ 정관용> 모두 몇 명이 관련된 그런 사건이었습니까?

◆ 박욱영> 그때 22명이었습니다.

◇ 정관용> 22명.

◆ 박욱영> 네.

◇ 정관용> 그래서 대체로 어떤 죄목으로 어느 정도의 형량들을 선고받으셨었죠?

◆ 박욱영> 제일 많이 형량을 받은 사람이 이상록이 15년을 받았죠. 15년을 받고, 6년인가 7년을 살다가 나왔어요.

◇ 정관용> 박욱영 의원은?

◆ 박욱영> 저는 1심 때는 3년을 받았는데, 2심 때는 제가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 정관용> 그러셨어요?

◆ 박욱영> 네. 한 1년 정도...

◇ 정관용> 옥살이를 하셨고?

◆ 박욱영> 네. 감옥 살다가.

◇ 정관용> 그때 바로 담당했던 변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까?

◆ 박욱영> 네. 노무현 대통령이 저하고 고호석하고 송병곤하고 이렇게 세 명을 변론하셨습니다.

◇ 정관용> 그때 당시는 노무현 변호사. 잘했나요? 변론.

◆ 박욱영> 변론 잘 하셨죠. (웃음)

◇ 정관용> 어떤 점을 잘했습니까?

◆ 박욱영> 그러니까 다른 변호사 분들은 그냥 참, 아니다, 아니라는 쪽으로 이렇게 했는데. 우리 노 변호사님은 우리 학생들이나 우리 시민들이, 이 학생들이 한 게 정당한 것 아니냐. 우리 사회를 위해서 정말 잘한 것이 아니냐, 못한 게 뭐 있느냐.

◇ 정관용> 그렇게 주장을 했다?

◆ 박욱영> 그런 식으로 주장을 했죠.

◇ 정관용> 노무현 변호사를 담당 변호사로 만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 박욱영> 계기는 모르죠. 하여튼 저희들이 수감이 돼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부산에서 김광일 변호사님하고 이흥록 변호사님 계셨는데 그분들이 많이 하셨는데. 저희들이 한 스물 몇 명이 되다 보니까 너무 많아서 변호사...

◇ 정관용> 알겠습니다. 부산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던 조금 더 선배들이 아마 후배 변호사들을 더 조직하고 그 가운데 노무현 변호사도 포함이 된 것 같고요.

◆ 박욱영>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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