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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김기춘의 '미스터리'와 검찰의 '퍼즐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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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진위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문건내용이 청와대가 밝힌대로 '터무니없는 내용', 근거가 없는 '찌라시'에 가까운 허위라는 결론으로 다가가고 있다.

검찰은 수사 시작부터 문건 내용에 나와있는대로 박근혜 대통령 비선측근인 정윤회 씨와 청와대 3인방 인사들이 '회합'(모임)을 가졌다면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은 '사실'이고 회합 자체가 없었다면 문서내용도 '허위'라는 명제를 세워놓았다.

검찰은 문건에서 연락책으로 나와있는 청와대 김춘식 행정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정, 박동열 전 대전국세청장, 정윤회 씨 등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나 진술과정에서 '회합'이 있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관련인사들의 통신내역은 물론 차명폰도 조사했으나 문건에 나오는 인사들이 지난해 이맘때쯤 한곳에 모였다는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수사 초기 세웠던 '명제'대로 관련자들의 '회합'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윤회 문건의 진위는 '허위로 보인다'는 결론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수의 언론이 예상했던 결과다. 대통령은 이 사건 고소 순간부터 문건의 진위는 "터무니없는 것이며 찌라시이다"라고 규정했고 이는 '대통령의 수사지침·가이드라인'이라고 비판받았다.

◈ '명제'부터 잘못 설정한 검찰

 

이는 문서진위에 대한 '범죄혐의 수사'가 아니라 '사실규명'조사를 벌인 검찰의 수사일 뿐이어서 문서 자체의 내용이 '완전히 터무니없고 황당한 얘기'라고 믿는 사람은 수사결과 발표에 관계없이 줄지 않을 것이다.

우선, 문건이 작성된 이유부터 살펴보면 검찰 수사가 '명제' 자체부터 잘못 설정했음을 알 수 있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문건의 제목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었다.

이 문건의 성격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비선실세' 정윤회 씨와 청와대 3인방들의 국정개입 의혹을 적시한 엄밀한 의미에서 '동향보고 문건'이었다.

청와대가 박관천 경정이 사용한 컴퓨터 문서파일을 복구한 결과 첫 초안 문건의 제목은 "비서실장의 사퇴설과 관련한 언론동향'이었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취임 4개월밖에 안된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이 흘러나오자 교체설의 배후를 캐기 위해 조사와 문서작성을 시작했음을 유추할 수 대목이다.

박 경정은 이후 보강조사와 문서수정을 거쳐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서를 최종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 문건은 조응천 비서관을 통해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됐다.

박관천 경정의 보강조사와 문서 보완과정에서 출발은 '비서실장 교체건'으로 시작했는데 결과는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 전반'으로 옮겨간 것이다.

조응천 비서관의 인터뷰와 박 경정의 검찰 진술내용에 따르면 박관천이 작성한 당시 문건은 '동향보고' 수준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조응천 비서관이 문건의 신빙성이 "6할 이상이다"라고 밝힌 것도 이 문서가 이번사건의 '키맨'이자 'TK인맥의 거물'인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라는 나름대로 신뢰할만한 인물 등으로부터 얻은 정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 김기춘 실장의 침묵… '역공'당한 작성자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윤성호 기자)

 

문제는 청와대가 동향보고인 이 문서에 대해 '정식 감찰조사'를 벌여 문서의 진위를 확인했으면 됐을 텐데 김기춘 실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고를 받은 뒤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만하고 '감찰 지시'를 별도로 내리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진술 내용에 따르면 조응천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은 '정윤회 문건'을 보고한 뒤 김 실장으로부터 '추가 보강지시'나 '감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김 실장으로부터 다음 지시가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보고를 받고 묵살했으며, 곧이어 문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은 별다른 경위 설명도 없이 '경찰복귀'라는 '역공'을 당하게 된다. 박관천이 1월 6일 이 문서를 생산한 뒤 다음 달인 2월에 청와대에서 쫓겨나고 경찰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4월 초에 문서유출 사건이 터지고 조응천 당시 비서관도 버티지 못한 채 4월 15일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정윤회 및 3인방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두 사람은 '동향 보고 문건'에 대한 정식적인 감찰조사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축출돼 버린 것이다.

◈ '조응천·박관천' 축출과 김 실장이 가진 '마지막 퍼즐''

도대체 1월 6일 문서 생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진걸까?

현 단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배경은 청와대 3인방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해당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파악하고 조응천과 박관천에 대해 '공격'에 나섰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판단된다.

김기춘 실장이 그들에게 '정윤회 문건'을 알려줬는지 아니면 다른 루트로 '해당문건'을 구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두 사람이 역공을 당하는 과정은 이 설명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조응천과 박관천 두 사람이 김기춘 실장의 의중을 무시하고 '정윤회 문건'을 작성했다가 역공을 당한 것일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취임한지 4개월여 만에 비서실장 사퇴설이 나돈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비서실장의 거취와 관련된 사안은 당연히 조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비서관이 독단적으로 조사해서 보고한다는 것은 청와대의 속성상 맞지 않는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업무에 밝은 한 법조인은 "그런 보고서는 비서관이 독단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관천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은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감찰 조사'에 앞서 작성된 '동향보고 문건'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문서는 김 실장이 사실상 묵살해버리는 바람에 청와대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검증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정윤회 문건' 파동은 75세의 노정치인 김기춘 실장의 미스터리한 행동에서 출발했다.

그는 왜 문건 작성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보고를 받은 뒤에도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그 의문이 풀려야 정윤회 문건의 진실도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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