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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광한은 음악을 사랑한 영원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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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DJ 최성원이 말하는 선배 DJ 김광한

지난 9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故(고) DJ 김광한 씨의 빈소가 10일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다.향년 69세. 발인은 11일 오전 10시.(사진공동취재단)

 

“영원한 아이. 김광한은 음악을 사랑한 아이였다. 음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그런 아이였던 사람이다.”

후배 DJ 최성원이 30년 넘게 알고 지낸 선배 DJ 김광한을 정의하는 단어는 ‘아이’였다.

현재 TBN 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를 진행 중인 최성원(한국방송DJ협회 미디어국장)은 한국의 3세대 DJ이다. 그의 아버지가 1세대 DJ 최동욱, 고 김광한은 그 중간에 있는 2세대 DJ였다.

한국에서 팝음악이 전성기였던 1970~80년대에 김광한은 대표 팝 음악 전문가였다.

최성원은 그런 김광한과 함께 DJ 공부를 했고, 또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최성원은 “친구이자, 스승 그리고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고 김광한을 설명했다.

DJ 최성원에게 김광한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어봤다.

DJ 최성원.

 

▶ 김광한과의 관계는.
= 개인적으로 30여 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나는 아저씨라고 부른다. 같이 DJ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내게는 스승이자, 삼촌, 친구같은 분이다.

▶ 어떻게 가까워지게 됐나.
= 내 아버님이 1세대 DJ 최동욱이다. 김광한의 스승이다. 김광한은 늘 자신이 DJ를 하게 된 이유로 아버지를 꼽았다. 나 역시 같은 말을 한다. 김광한이 있어서 방송을 하게 됐다. 아버지가 1세대라면, 김광한이 2세대, 내가 3세대 DJ이다.

▶ 인간 김광한은 어떤 사람이었나.
= 방송에 대해서는 발음부터 시작해 모든 게 굉장히 꼼꼼했다.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모든 걸 쏟다시피 하며 가르쳤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김광한은 인자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는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뜬금없이 용돈을 주고, 일하다가도 문득 연락해서는 잘 살고 있지라고 묻곤 했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다 꺼내주고, 항상 관심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외로웠던 분이기도 하고.

▶ 외로웠다고?
= 슬하에 자녀가 없고, 감성적으로도 다른 사람에 비해 순수한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게 잘해주려는 마음이 있었다.

▶ 막역한 사이였던 거 같은데, 별세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을 것 같다.
= 생방송 하는 중에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런 소식에 순간 어안이 벙벙하더라. 나뿐 만이 아닐 거다. 가족들도 당황했을 거고, 후배들도 많이 놀랐다.

(사진공동취재단)

 

▶ 세상을 떠나기 전 김광한은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었나.
= 한 지자체와 음악제를 준비 중이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음악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나도 동참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는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

또 팝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본인이 1980년 팝 전성기 시대해 활동해서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전성기를 다시 만들어 보려고 했다. 해외 옛 아티스트에 대한 공연 기획하고 유치하려 했고, 팝 전문 디제이들이 그에 걸맞게 활동하기를 바랐다.

▶ 김광한의 후배들이 많을 텐데. 김광한을 기리는 활동 같은 건 계획이 없나.
= 나와 같이 김광한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계기로 그런 선배들과 의기투합해서 방송 DJ라는 걸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그게 김광한이 바라던 일이기도 하니까. 방송 DJ라는 직업은 직업이 그냥 가수이거나 배우인 분들이 잠시 앉았다 가는 자리가 아니다. 음악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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