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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일기] 스펙에 주눅들어 증권사 꿈 접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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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나의 노력 과소평가…역량으로 나를 어필할 것"…강혜림씨 편

 

나는 숫자를 좋아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하고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관련된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었다. 나의 학벌로는 어림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스펙 앞에선 실력이라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꿈이 신기루로 바뀌니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었다. 3월부터 문화산업에서 철강산업까지 가리지 않고 20여 곳에 원서를 냈다. 손에 쥔 건 단 두 번의 면접기회. 참패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나마 관심분야를 찾게 됐다. 식품, 유통, 화장품 업계다. 마케팅이나 영업직에 도전중이지만 다시 ‘여자사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시 원점이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취업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여름방학이 너무 중요하다. 스펙으로 남을 만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자산운용회사 사무보조 자리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던 투자관련 업계인 만큼 뭐라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수증 처리하는 법, 품의하는 법 등 그야말로 ‘보조업무’다. 지루했다.

보조밖에 안 되는 나를 그런데 회사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나의 젊음, 가능성,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 때문이다. 정직원들도 ‘그 자격증 어떻게 땄냐’며 노하우를 물어온다. 신기한 일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던 나의 지난날을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 같다. 내가 너무 스펙에 주눅들어있었던 거 같다. 탈 스펙 시대라고 하는데. 스펙을 능가하는 역량으로 나를 어필했어야 했다.

취업은 자신을 잘 상품화해서 매력있는 지원자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것에 자신이 없다.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8월말쯤 격렬하게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동남아로. 회사 대리님의 충고대로 거침없이 모험을 하고 올 것이다. 부모님 눈치를 보는 것이 회사눈치를 보는 것 보다 쉽다고 한다. 후회할 과거를 살고 싶지 않다.

[편집자의 글] 이 기사는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를 맞아 CBS노컷뉴스가 우리시대 청년 구직자들의 속내를 그들의 '음성'으로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마련된 연속기획입니다. 취업준비생들의 애환을 나누고 그들을 위로하고 또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인 기업들에게도 서류와 짧은 면접으로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취준생의 면면을 보다 세밀하게 판단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취준생들에게 1개월 간 각자의 스마트폰에 자신의 목소리로 취업준비 활동을 매일 일기처럼 음성으로 녹음하게 했습니다. 물론 취준생들에게는 소정의 사례비가 지급됩니다. 제작진에 전송돼 온 한달치 음성파일은 편집 과정을 거쳐 미니 다큐로 가공돼 CBS라디오 뉴스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음성 파일이 탑재된 텍스트 기사 형태로 편집돼 이 기사처럼 매주 한 편씩 소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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