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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희귀병 걸렸어도…'귀향'은 꼭 찍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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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그 이후 ①] '귀향' 임성철 제작 프로듀서가 말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해냈습니다. 영화 '귀향'은 350만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제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지난 3월 극장가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귀향'. 개봉 두 달이 지난 오늘, 그 기적같은 여정의 유산을 돌아보는 기획을 CBS노컷뉴스에서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난치희귀병 걸렸어도…'귀향'은 꼭 찍어야 했죠"
②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위안부' 문제는 이대로 끝"
③ '귀향' 본 日 유학생 "역사 알 권리, 국가로부터 빼앗겨"

영화 '귀향'의 메가폰을 잡은 조정래 감독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모두가 자신의 곁을 떠날 때, 아내와 임성철 PD만이 끝까지 곁에 남아 '귀향'을 만들 수 있었다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은 현재 35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많은 투자사들이 '대중성 부족'을 이유로 투자를 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이었다.

14년의 기다림, 기적같은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놀라운 흥행까지. 임성철 PD는 제작 프로듀서로, 배우로 조정래 감독의 조력자로 이 모든 시간을 함께해왔다. '귀향'의 또 다른 주인공인 그에게 '귀향' 탄생부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귀향'에 일본군 류스케 역으로 출연한 임성철 제작 프로듀서.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 조연 배우에서 제작 PD로…'귀향'과의 인연

임성철 PD가 조정래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른 다섯 무렵이었다. 조정래 감독은 비중있는 일본군 조연 기노시타 역을 맡을 배우를 찾다가 그를 만났다. 그 전까지 미술을 전공한 임 PD는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연기 활동을 하며, 애니메이션 콘텐츠 개발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노시타 역으로 저를 캐스팅했는데 나중에 류스케 역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게 처음 만나고 7년 동안 함께 하게 됐죠. 그런데 촬영 들어가기 한달 전에 제작 PD가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뭐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막상 하고 보니까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더라고요. 일단 개봉 이전에는 수익이 없어서 투자회사에 다 요청을 넣었는데 한 곳도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남은 방법은 제가 대출하는 것뿐이었고요. 집도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고, 조금 가난해졌지만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면서 기분좋게 웃는 그는 근심 하나 없는 표정이었다. 비록 영화가 흥행을 해, 정산이 잘 되면 갚을 수 있는 빚일지라도 촬영하는 내내 마음 고생을 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 고생 뿐만이 아니었다. 임성철 PD는 촬영 내내 부러진 갈비뼈와 몸 속에 생긴 종양을 달고 버텨왔던 것.

"몸 상태가 이상해서 검사를 세 차례나 했는데 영화 촬영 도중에는 그게 발견이 안됐어요. 다행이죠. 만약에 그 때 발견됐으면 바로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했을테니까요. 촬영장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다 무서워했어요. 일주일마다 병원에 실려가고, 얼굴은 아파서 부었지,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숨을 못 쉬니까 말도 잘 안했거든요. 제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아프다, 힘들다 이야기를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투자 받을 때는 나쁘지 않았어요. 불쌍하게 여겨서 투자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임성철 PD는 촬영 이후 45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갈비뼈 골절과 종양뿐만 아니라 호르몬과 관련된 난치성 희귀병까지 앓고 있다. 많은 성인병과 골다공증 등이 지금도 그를 고통스럽게 괴롭힌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하루 하루 촬영을 하면서 '오늘 죽어도 괜찮겠다'는 기도를 반복했다. 고통이 컸던 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냥 이제는 이것조차도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을 통해 제가 조금 더 단련되고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아플 때 많이 생각했던게 그래도 전 아프면 위로해주는 스태프들이나 감독님이라도 있는데 '위안부' 소녀들은 어떤 보호도 없이 죽어갔다는 겁니다. 저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무기력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가 자신을 흔드는 온갖 시련에도 끝까지 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이와 같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에 공감해주기를 바랐다.

"감독님이 느리게 갈 수는 있지만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배우는 못하더라도 스태프나 조력자로 남아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감독님과 함께 '나눔의 집'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죄책감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영화가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밖에 없다고요."

임성철 PD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 했던 이유는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간 지난날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 엄격하게 지적했다.

"'위안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살았던 제 자신을 속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그 문제는 현재진행형인데 말이죠. 일본은 독일처럼 사과는 커녕 큰소리 치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그 일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왔던 제가 미웠습니다. 그걸 벗어나고 싶었어요.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서 일본에 상영되면 좋을 것 같아요. 백마디 말이나 정치적 이슈보다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일본에서도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영화에 채 담지 못한 장면들도 많다. 원래 '귀향'의 길이는 4시간 분량에 달한다. 임성철 PD는 여전히 그 영상들을 볼 때마다 힘들다.

"낯설고 힘들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래요. 고통의 현장이나 위안소 소녀들의 이야기, 즉 과거 장면들이 많이 편집됐어요. 아마 다 담겼다면 아무도 못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도 그런 감정 때문에 보기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임성철 PD에게는 거의 자원 봉사나 다름없이 일했던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가 소중한 존재다. 본인이 아파서 고생한만큼, 배우와 스태프들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나 개인적인 사명감이나 감정이 다 있었던 거죠. 슬픔에 동참하고 재능을 나누고 싶은. 촬영 감독 같은 경우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이건 전부 자기 희생을 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무엇을 받으려고 하면 안된다'고 설득했고, 조명 감독도 마찬가집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자기 힘으로 팀을 꾸려서 참여했어요."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 '공감'이 없는 시대…'귀향'이 남긴 것

'귀향'은 현재 북미와 호주 등 외국에서 개봉을 마쳤다. 전쟁 속에서 무참히 짓밟힌 여성 인권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통했다. 무거운 역사를 다룬 '귀향'에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호응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임성철 PD는 이를 통해 어떤 희망을 봤다.

"만약 영화가 안되면 감독님과 그냥 유튜브에 무료로 뿌리려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아직 사회가 따뜻하고, 아픔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적처럼 단체 관람도 많았고요. 아픔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의 부드러운 사회 운동처럼 느껴졌어요."

일본군 류스케를 연기한 소감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몸이 아팠기 때문에 전쟁의 광기에 휩쓸린 연기에도 훨씬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전쟁에서의 불안감, 그 상황에 대한 원망을 해소하는데 그 해소거리가 소녀들인 겁니다. 그래서 점점 잔인해지는 거죠. 그런 생각으로 몰입해서 연기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났는데 소녀들을 미안해서 보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부끄럽고 그래서 '위안부' 소녀 역을 맡은 배우들과 대화가 힘들었어요. 친하게 지낼 수도 없었고요. 일본군 배역한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안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아픔을 공감할 수 없는' 시대라고 칭했다. 아무리 똑똑해도 '공감'하지 못한다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 '위안부'라는 역사적 아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 이 사회는 충동에 대한 조절과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시대죠.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관심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도 깊이 있게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지적인 분들도 많이 만나봤는데 그만큼 배웠다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더 그런 능력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이 사회가 똑똑한 사람들이 끌고 가는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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