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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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인 학교건축, 심폐소생이 필요하다④]
교사·학생 의견 적극 반영해 공간 바꾸는 독일 학교
국내 학교건축도 '사용자 참여 설계'가 화두
설계 참여학생들, 공간 만족도 높고 공간규칙 만들어 관리에도 열심

하인리히 헤르츠 슐레의 안드레아스 호너 교장선생님이 취재진에게 설계도면을 보여주며 학교공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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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카를스루에시에 위치한 전기공학 직업학교 '하인리히 헤르츠 슐레(Heinrich-Hertz-Schule)'. 1970년 설립된 이 학교는 2014년부터 학교건물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학교 공간을 바꿀 때 학생과 교사 등 사용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는 점이다.

교장 선생님 안드레아스 호너는 공간철학이 뚜렷하다. '학생은 배우기 편하고, 교사는 가르치기 편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원칙 아래, 호너는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교실 공간을 배치·구성하고 교실에 새로 설치한 터치스크린 TV 기종과 사양을 통일했다.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교무실도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카페테리아처럼 꾸미는 중이다.

호너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반영해 교실 공간을 배치하고 구성했다.(왼쪽) 또한 선생님들이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되게끔 교탁을 직접 제작했다(오른쪽)
학생들도 건물 리모델링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한다. "화장실을 늘려달라"는 단순한 요구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프로젝트(학교를 더 스마트하게 만드는 법)를 진행해 교실 보일러 자동 꺼짐 장치를 개발했다.

호너는 "교사·학생은 학교와 같은 목표를 갖고 생활한다. 공간을 바꿀 때 이들의 의견을 듣는 건 당연하다. 실제 피드백 덕분에 학교가 발전하고 있다"며 "리모델링 이유가 합당하면 주와 시에서 관련 예산을 부족함 없이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국내 학교건축 화두는 사용자 참여 설계


국내 학교건축도 '사용자 참여 설계'가 화두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리모델링이 필요한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교공간혁신사업의 핵심은 사용자 참여 설계와 학교공간혁신 촉진자(이하 퍼실리테이터) 양성이다.

사용자 참여 설계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학교 사용자가 교육청 공무원과 설계자, 퍼실리테이터 등 전문가와 함께 학교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퍼실리테이터는 사용자와 전문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사용자 참여 설계가 교육과정과 연계될 수 있도록 돕는다.

2012년 서울시교육청은 은로초등학교 등 몇 군데 학교를 개축하면서 사용자 참여 설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빠듯한 예산과 일정, 관계자들이 사업 취지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예전 방식 고수, 사용자와 설계자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등의 문제를 노출했고, 정식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은로초등학교 개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조도연(디엔비건축) 대표는 "예산 등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학생들의 요구사항 중 극히 일부만 설계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국내 학교건축은 여전히 획일화의 늪에 빠져 있다. 2012년과 달리 교육현장에서는 사용자 참여 설계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 전남 광주 어룡초등학교…"학교 오는 게 즐거워요"

어룡초등학교의 4층 동아리 공간. 학생들은 이 곳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만든 곳이서 가장 애착이 가고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댄스를 하고 싶어요."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룡초등학교 4층에는 동아리 공간이 있다. 나무로 된 바닥 정중앙에는 주황색 빈백과 탁자, 왼쪽에는 레고블록과 보드게임, 책이 비치된 책장이 놓여 있다. 오른쪽에는 작은 방이 있다. 노란색 벽과 편백나무 탁자로 꾸민 방에서 학생들은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바닥 바로 앞 공간의 천장에는 빔 프로젝터, 왼쪽 벽에는 전면거울, 오른쪽 벽에는 낙서용 강화유리칠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은 댄스동아리의 연습장이 되기도 하고, 게릴라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광주시교육청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아 만든 이 공간에는 곳곳에 학생들의 생각이 녹아 있다. 학생공간위원회 소속 학생들은 반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취합한 뒤 학교공간위원회에서 교장, 설계자, 학부모 등과 머리를 맞대고 설계 초안을 만들었다. 공간이 만들어진 뒤에도 학생들은 직접 공간 사용규칙을 만들고 당번을 정해 공간을 관리한다.

3명의 학생 모두 동아리 공간 설계에 참여했다. 동아리 공간에서 포즈를 취한 6학년 학생 조시연, 정승은, 황희경 양(좌로부터)

3층 놀이공간 한 켠에 붙어있는 사용규칙. 학생들이 직접 회의를 통해 만든 규칙이다
조시연(6학년) 양은 "춤추는 걸 좋아해서 전면거울 아이디어를 냈다. 저희 의견이 반영되어서 그런지 학교에서 4층 동아리 공간이 가장 좋다. 쉬는 시간에 꼭 한 번씩 들른다. 내년에 졸업해도 이 공간이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황희경(6학년) 양은 "4층 공간이 생긴 후 정리정돈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고, 전교학생회장인 정승은(6학년) 양은 "4층 공간 덕분에 학교가 '즐거운 학교, 오고 싶은 학교'가 됐다. 단순히 노는 공간이 아닌 배우는 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 구미 봉곡초등학교…"학교에 주인의식이 생겼어요"

봉곡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어린이 권리 지킴이' 프로젝트 수업에서 기획한 내용과 제작한 모형들. 복도 공간에 전시해 두었다
봉곡초등학교는 교육과정과 연계해 사용자 참여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출발점은 1학기 5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수업(주제: 어린이 권리 지킴이). 학생들은 '학교에 어린이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에 주목했고, 50개 모둠으로 나뉘어 각자 자신이 원하는 학교 공간을 기획하고 모형을 제작했다. 모형은 교내 공간혁신 메이커 페어에서 소개한 뒤 지금은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2학기에는 '놀이건축' 동아리 소속 5학년 학생 18명이 이준희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매주 1시간씩 총 8시간에 걸쳐 심화한 내용을 배우고 있다. 교육부에서 공간혁신 예산을 지원받은 봉곡초등학교는 올 겨울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놀이공간 설계에 들어간다.

정재환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우고 쉬는 공간을 직접 설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법적 제한 때문에 학생들이 내는 아이디어 100가지 중 80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쉽지만,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학생들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③'낙오자는 없다'…건물에 교육철학 반영한 독일 ASW
④ "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계속)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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