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태원', 섣불리 재단하거나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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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태원'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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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에 인접한 기지촌으로 성장한 곳, 미군이 줄고 기지 이전 움직임이 일자 빠른 속도로 쇠락한 곳, 젊은 예술가들과 상인들이 몰려 특색 있는 명소를 만들어 단숨에 가장 '힙한' 동네가 된 곳, 너무 빨리 젠트리피케이션(특정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며 개발이 가속되고 임대료가 오르며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이 온 후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곳, 이태원.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태원'(감독 강유가람)은 언제나 독특하거나 낯선 위치에 있었던 이태원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손님 혹은 이방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머물렀던 주민, 그중에서도 여성인 세 사람에게 집중한다.

30년 넘게 클럽 '그랜드올아프리'를 운영한 삼숙, 긴 속눈썹을 붙인 화려한 외모가 눈에 띄는 나키, 10대 후반부터 이태원을 들락거린 마당발 영화. 이들의 일상과 이들이 간직해 온 기억으로 이태원이라는 동네를 돌아본다.

2014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 속 이태원은 한창 '힙할' 때다. 밤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디제잉 페스티벌이나 할로윈 행사가 있을 땐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다. 여기까지가 '잠시 들르는 이들'이 볼 수 있는 장면이라면, 다큐멘터리 '이태원'은 좀 더 집요하게 구석구석을 돈다. 화려한 밤과 달리 그냥 '사람 사는 동네'로서 이태원의 낮을 볼 수 있다. 거리를 청소하는 평범한 이웃이 있고, 지자체의 방역차가 돌아다니며, 재개발 등 이주/정주 문제가 가장 큰 이슈인.


이태원에 오래 산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각자 자기만의 삶을 사는 세 여성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이들의 인생 역정이 워낙 또렷해서 한눈팔 새가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받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바로 돈을 벌어야 했다. 폭력도 지긋지긋했다. 걸핏하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 때문에 치를 떨거나,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쳤다. 외국인 남편과 길을 걷다가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지나온 삶은 녹록지 않았고 지금도 아주 희망적이지는 않다. 보살펴 줄 사람이 없고, 나이가 들어 노동하기가 힘들어지고, 먹고살기 빠듯하고, 같은 사정 때문에.

그러나 셋 중 누구도 자기연민에 빠져있지 않는다. "라이프 이즈 숏, 어? 인생은 짧아", "할 짓은 다 해봤잖아. 후회는 없어", "이태원 클럽에서 일한 여자들은 나라의 국보라고 생각해. 난 국보라고 생각해", "좋은 일도 다 못 하는데 (나쁜 건) 쳐다보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아야지", "항상 감사하고 살지" 등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잘못 산 인생'이라며 괴로워하지 않는다.


숙연함은 오히려 관객의 몫일지도 모른다. '기지촌', '이태원', '클럽을 운영하거나 클럽에서 일했던 여성'에게 가진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이들의 삶을 섣불리 재단했다면 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그의 존엄을 지키려고 애쓴다면, 과연 쉽게 동정하는 게 가능할까.

어릴 때부터 생계를 책임졌고 지금도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삼숙의 반문은 그래서 더 아프다. '어쨌든 돈을 계속 대 준 네 탓도 있지 않냐'는 세상의 손가락질에 삼숙은 묻는다. 칼침 맞을 수도 있는데 어떡하냐고, 그렇게 형제간에 살인이 나면 후손은 살인자 집안이 되지 않겠냐고.

누군가 어떻게든 남겨놓지 않으면 흩어지거나 흘러가 버리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작업해 온 강유가람 감독의 작품이다. 2014년 촬영해 2016년부터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은 '이태원'이 드디어 극장판으로 개봉했다.

5일 개봉, 상영시간 94분 38초, 15세 이상 관람가, 한국, 다큐멘터리.

'이태원'은 30년이 넘도록 격동의 이태원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 세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이들의 기억과 일상을 통해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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