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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열대야 오기 전에…다급한 퇴근길, 누군가엔 무거운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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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서울엔 최저기온 25도 이상의 열대야가 예년보다 3주 먼저 찾아왔다. 시민들은 도망치듯 도심을 빠져나갔고, 청소노동자들은 코로나19와 겹친 더위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 7일째
"집이 가장 시원"…다급한 퇴근행렬
청소, 폐지수집 근로자 한 밤 더위와 씨름

중복인 21일 저녁, 퇴근 길 버스 정류장엔 길게 줄이 늘어섰다. 덥고 습한 밤공기에 시민들은 마스크도 내리지 못하고 연신 땀을 닦아냈다. 임민정 기자. 중복인 21일 저녁, 퇴근 길 버스 정류장엔 길게 줄이 늘어섰다. 덥고 습한 밤공기에 시민들은 마스크도 내리지 못하고 연신 땀을 닦아냈다. 임민정 기자. 
중복인 21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렸다. 그야말로 전국이 펄펄 끓었다. 밤이 되고 어둠이 찾아왔지만 도심을 휘감았던 열기는 물러가지 않았다.

이날도 서울 도심엔 최저 기온이 25℃가 넘는 열대야가 7일째 이어졌다. 작년보다 23일이나 먼저 찾아온 열대야는 더 길게 머무를 기세다.

퇴근행렬은 식지 않는 도심을 도망치듯 다급하고 발 빠르게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선 야간 근로자들이 한 밤의 무더위와 씨름했다.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인근엔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퇴근 길 버스 정류장엔 길게 줄이 늘어섰다. "덥다 더워"라고 말하는 시민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덥고 습한 밤공기에 시민들은 마스크도 내리지 못하고 연신 땀을 닦아냈다. 더위에 머리를 올려 묶는 시민도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송모(63)씨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송씨는 "밤에도 너무 힘들죠.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더우니까. (버스는) 10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버스에 탑승한 시민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에어컨 바람세기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열대야에 손에 든 휴대용 선풍기도 무용지물이었다. 역까지 15분은 걸어야한다던 정수빈(20)씨는 "선풍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집에 가서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 쐬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했다.

인턴 사원인 현모(20)씨도 더위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회사 안에서는 뽀송뽀송 했는데 회사 나오자마자 땀을 흘렸다"며 "아침에 지하철역을 나와 내리쬐는 햇빛을 보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진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일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중구 일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A씨는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3시에 퇴근한다. 임민정 기자.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일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중구 일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A씨는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3시에 퇴근한다. 임민정 기자. 
한편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일과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중구 일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A씨는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3시에 퇴근한다. 밤 9시 30분쯤 만난 A씨는 이미 120ℓ짜리 음식물 통 10개를 한 곳에 모아뒀다. 14년차인 A씨는 골목길 곳곳 쓰레기가 있는 곳을 꿰고 있었다.

열대야 탓에 마스크를 쓴 A씨 얼굴은 더위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이 가득했다. 그가 쓰레기를 모으기 위해 끌고 다니는 수레엔 물병이 담긴 작은 가방이 달려 있었다. 그는 "밤에도 더워 수시로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게마다 쓰레기를 내놓는데 이 근방에 음식점이 150개 정도 된다. 한 열군데 정도 정해진 곳에 모아둬야 이따 쓰레기차가 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 차량은 밤 11시쯤, 재활용 쓰레기 차량은 새벽 1시쯤 와 모아진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A씨는 쓰레기 상차도 해야 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 가서 기다려야지" 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짬을 내 쉴 수 없는 이유다.

밤 9시 30분쯤 만난 청소노동자 A씨. 열대야 탓에 마스크를 쓴 A씨 얼굴은 더위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이 가득했다. 임민정 기자. 밤 9시 30분쯤 만난 청소노동자 A씨. 열대야 탓에 마스크를 쓴 A씨 얼굴은 더위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이 가득했다. 임민정 기자. 
1시간 가량 A씨를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니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쓰레기를 가득 싣고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땐 차들이 A씨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음식물 쓰레기를 검은 비닐 봉지에 싸 그냥 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A씨가 그냥 둘 수가 없어 검은 비닐 봉지를 잡는 순간, 봉지가 터져 시뻘건 국물이 줄줄 샜다.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고르던 그는 "냄새는 맨날 맡으니까 잘 모른다"고 했다.

40년 가까이 폐지 수집을 했다는 은모(64)씨도 밤이 돼야 일을 시작한다. 은씨는 "우리는 생계로 (이 일을) 한다. 5시 반에 나와 일하고 밤 12시에 들어간다. 모아 놨던 폐지는 새벽 4시에 직접 고물상으로 들고 간다. 일은 아침 9시가 돼야 끝난다. 그 시간부터 이제 자는 거다"고 말했다. 밤 사이 모은 폐지로 은씨는 4~5만원의 일당을 번다.

그는 코로나19에 더위까지 찾아와 원망스럽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으니까 물건(폐지)이 안 나오지. 이거 봐. 사람 한 명도 안다니잖아. 문은 다 열었는데. 이번 주 저번 주 35도 36도가 기본 아니여. 거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 가까이 나오니까. 마스크 쓰면 일을 못한다니까. 마스크 쓰면 숨이 꽉꽉 막히는 걸".

광화문 인근 치킨 집에서 일하는 B씨도 "더위에 숨이 막힌다. 주방엔 선풍기도 없어 덥다. 튀기는 음식이다 보니 열기가 상당하다"고 했다.  

자그마한 부스에서 주차장 관리를 하는 주모(49)씨는 열대야에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시원한 걸 바랄 수가 있습니까. 밖에서 일하는데. (오늘은) 거의 뭐 30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네요. 저기 봐요". 주씨가 가리킨 큰 전광판의 온도는 32.3도를 가리켰다. 그는 "에어컨이라도 없으면 쪄죽는다. 더워서 바람이라도 들어오라고 창문을 열어놨다고 했다"고 말했다.

청계천엔 더위를 식히러 나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 심모(22)씨는 "카페도 일찍 닫고 갈 데가 없어서 밖에 나와 있긴 한데 습해서 덥다"고 토로했다. 지인과 함께 청계천을 찾은 김모(26)씨는 "아까 발을 담갔는데 바다 계곡 못가는 피서 온 기분이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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