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제공 탄소 중립, 기후 행동,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의 이니셜을 딴 단어로 친환경·사회적 책임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명 경영 방침을 의미함). 최근 1~2년새 기후 위기가 전 세계 화두가 되면서 접하는 빈도가 부쩍 높아진 용어다. 연극계도 시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아직 나의 일처럼 와 닿지 않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24시간 남은 지구의 시계가 완전히 멈추기까지 60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연극은 작·연출을 맡은 전윤환(극단 앤드씨어터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냈다. 전 연출은 2018년 강화도로 귀농해 5년째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국립극단으로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연극을 의뢰받고 "드디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구나" 들뜬 마음도 잠시, 거대 담론인 기후 위기에 감정 이입이 안 돼 대본 작업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돌파구는 대본 초고를 완성한 후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라는 단체와 4박 5일간 투어를 하면서 생겼다. 전 연출은 기후 위기로 피해를 입고 고통받은 기후 당사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후 위기의 이면에는 불평등과 착취, 폭력이 있음을.
국립극단 제공연극에 참여하는 11명의 배우는 이 작품을 쓴 '작가'인 동시에 배우 본인인 '나'로 존재한다. 작가가 지난 1월 광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기후 당사자의 싸움은 노동권 싸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연극은 소재와 주제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국내 연극 최초로 '에코드라마투르그'(박지선)가 스태프로 합류했다. 에코드라마투르그는 친환경 제작 방안을 조사해 프로덕션에 공유·적용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속가능발전경영센터와 함께 공연을 만들고 홍보하고 관람하기까지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산정해 '공연계 탄소 절감 기준'을 마련한다. 배우·스태프·관람객의 탄소 발자국과 연습·공연 기간 ·공연 종료 후 발생하는 폐기물 양을 측정해 '기후 노트'도 제작·배포할 계획이다.
연극에는 암전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지구가 불을 꺼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후 비상 사태가 코앞에 닥친 현실이고,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연극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공연은 6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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