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달려온 다양한 영화인들과 영화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소설 <퇴마록>은 여타의 오컬트와 달리 파문당한 신부와 무공을 익힌 파이터, 도술과 부적술 등을 사용하는 예언의 아이, 애염명왕의 힘을 품은 신의 아바타라(신의 화신을 뜻하는 힌두교 용어)가 등장하며 동양과 서양의 오컬트가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오오라와 무공, 부적과 주술, 신의 힘이 악을 물리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하다. 여기에 소설을 보며 각자 상상해 온 거대한 <퇴마록>의 세계가 눈앞에 구현되는 걸 만나는 순간, '퇴마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걸 '퇴마록'에 담아내기 위해 필요한 건 시각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 청각적인 요소였다. 즉 동서양의 오컬트가 담긴 <퇴마록>의 세계를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박 신부, 현암, 준후, 승희에게 어떤 목소리를 입혀 생명력을 부여할 것인가.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 생명력을 지니게 된 캐릭터들을 어떻게 관객들과 공명하게 할 것인가.
기획부터 시나리오 개발까지 총 제작 5년, 스태프 680여 명이 투입되어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가 지금의 '퇴마록'이다. 곽진영 기획 프로듀서는 '퇴마록'은 앞으로 이어질 오랜 여정의 '에피타이저'일 뿐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음악부터 성우까지…'퇴마록' 완성한 요소들
▷ 영화를 접한 관객들 사이에서 캐릭터들이 걸을 때 어색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동철 감독(이하 김동철)> 그 부분은 우리가 좀 더 2D 감성을 내려고 풀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에서 프레임을 조금씩 걷어내다 보니까 때에 따라서는 약간 립싱크도 안 맞는 것 같다고 의견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후속편에는 개선된 작업을 선보이고자 한다.
▷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탱화다. 탱화가 굉장히 리얼리티가 높으면서도 어느 정도 서구적인 모습을 지닌 캐릭터들과 달리 불교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기며 영화의 분위기를 드러냈다.
김동철> 해동밀교라는 가상의 종교에 예언서로 나오는 '해동감결'이 가진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했다. 이것도 캐릭터와 같은 관점으로 작업했다. 탱화를 한 번 봤을 때 해동감결이 가진 거대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 이스터에그 넣어뒀다. 작가님 설명에 의하면 해동감결은 전체를 아우르는 예언이다. 그래서 숨은 퇴마록의 이야기들이 탱화에 숨겨져 있다. 탱화가 총 3개인데, 오른쪽과 왼쪽 탱화는 해동밀교가 만들어진 시초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가운데가 앞으로 일어날 예언이다. 자세히 보면 <퇴마록>의 전체적인 줄기가 들어가 있다.
▷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이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음악 작업을 하면서 주요하게 생각한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김동철> 전반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는 캐릭터 테마곡을 쓰면 좋겠다는 거였다. 음악감독님과 기획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별 테마곡으로 전반적인 OST를 꾸려가자고 했다. 그게 긴 호흡(시리즈물)이었을 때는 다양하게 쓰일 수 있었지만, 하나로 묶어서 극장판이 된 이후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기로 했다.
국악의 한국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려 넣고,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가미해서 퓨전으로 최대한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한 관점이었다. 아무래도 동서양의 여러 종교가 섞여서 악을 물리쳐가는 스토리다 보니 동서양의 느낌을 어떻게든 녹여내려고 계속 시도했다. 그래도 캐릭터 테마곡 흔적이 남은 부분이 준후의 감정 신이었다. 최대한 국악 요소를 살리고자 대금을 넣어 준후의 감정을 극대화하려 했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김동철 감독. 로커스 제공 ▷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악마 아스타로트와 악신이 된 서 교주의 비주얼이 비슷한 섬뜩함을 풍기면서도 다른 비주얼을 지녔다. 아스타로트와 서 교주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건가?
김동철> 두 캐릭터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악'이라는 존재가 일반인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고민했을 때, '신'과 같이 의지할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와야 더 악랄할 거라 생각했다. 지옥도에 나오는 신의 모습을 차용해 디자인을 시작했다. 아스타로트의 경우, 소설에서도 후반부에 '끝판왕'급의 강력한 캐릭터다. 그 권위를 살리기 위해 서양에 있는 신의 모습을 많이 닮도록 디자인했다.
▷ 현암과 도혜선사와의 만남 이후 현암을 노리는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정말 공포스러움을 자아내는 비주얼이었다. 해당 장면을 만들며 중요시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김동철> 그 부분은 사실 공포 분위기도 공포 분위기지만 저돌적인 캐릭터인 현암에게 내재된 공포가 트라우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연출한 거다. 박 신부가 가진 공포는 구하지 못한 소녀에 대한 죄책감이다. 반면 현암은 분노에 가깝게 표현하고 행동한다. 그 공포가 좀 더 차갑고, 자기가 대면했을 때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을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귀신이 좀 더 주도적인 느낌이어야 했다.
공포도 결이 다른데, 박 신부의 공포는 서양적인 공포다. 악마가 '너 때문에'라며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약을 올리는 방식이다. 반면 현암은 무기력하게 당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 보니 원초적인 공포를 생각하게 됐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 확실히 영화를 보면 얼굴 및 눈 클로즈업 샷이 많다. 각 캐릭터가 가진 트라우마, 고뇌는 그 캐릭터를 설명하는 주요 장치인 동시에 앞으로 캐릭터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각 캐릭터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이 눈빛 등을 통해 전달되는 측면이 많았다.
김동철> 우리 작품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감정 전달을 할 때 표정에 집중해서 보여주기로 했다. 오컬트적인 요소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샷들을 많이 썼다. 의미 있는 샷이라고 한다면, 두 악마는 내려오는 식으로 구도로 짰다. 절대적인 신의 영역이라 자부하는 악들이 내려오는 거다. 그런 샷들도 많이 잡았다.
▷ 박 신부 역 최한, 이현암 역 남도형, 장준후 역 정유정, 현승희 역 김연우 성우까지 국내 최고의 성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이 종종 배우들을 목소리 연기로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부터 전문 성우 캐스팅하기로 했나? 그리고 캐스팅할 때 중점 둔 부분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김동철>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화제성을 떠나서 좀 더 극의 리얼리티와 감정을 극대화할 방향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성우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인지도나 인기 등을 기준으로 성우를 뽑진 않았다. 오히려 이름을 모르고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아낸 뒤 접촉했다. 그리고 각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 좋은 분들이 캐스팅됐다.
일화 하나를 말하자면, 우리는 성우들께 기존보다 성우 톤을 죽여달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지문인 분들이다 보니, 좀 더 작가님이 말씀한 연기 톤, 캐릭터성에 맞춰서 녹음을 꽤 많이 했다. 기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많았다. 듣고 입혀보고 다시 녹음을 요청하기도 했다.
▷ 그런 건가? 예를 들면 남도형 성우의 경우 현암이 아닌 코난으로 들릴 수 있다던가.(웃음)
김동철> 그렇다.(웃음) 그래서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특히 남도형 성우의 경우 목을 많이 써서 아팠을 거다. 내가 계속 리테이크를 내기도 했다.
'퇴마록'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
▷ 이번 작품에서 구현하기 까다로웠던 장면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김동철> 엔딩 컷이 제일 까다로웠다. 사실 엔딩은 '하늘이 불타던 날' 에피소드의 전부다. 그 장면과 그 대사가 소설책 표지 문구로 쓸 정도로 강렬한 장면이다 보니 '퇴마록'을 기획하고 제작을 시작했을 때도 엔딩이 제일 처음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에 끝났났다.
불타는 하늘의 아련함과 쓸쓸함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부터 시작해 음악까지 모든 공정의 모든 사람이 다 놓지 못했던 컷이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기억에 제일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작업했다. 액션도, 스토리도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그 마지막에 제일 힘이 많이 들어갔다.
▷ 작품을 마치고 나서 돌아봤을 때 가장 뿌듯하게 다가온 건 무엇인가?
김동철> 아직 개봉 전이지만, 봐주셨던 분들은 모두가 다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 주셨다. 그 부분이 제일 뿌듯하다. 또 하나는 "드디어 냈다!"(웃음) <퇴마록>은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내가 작가님과 해서 냈다는 부분이 제일 뿌듯하다.(웃음)
곽진영 기획 프로듀서(이하 곽진영)> 정말 뭐 하나 꼽기가 힘들 정도로 쉬운 건 하나도 없고 계속 어려운 작업이었다. 잘 되면 뿌듯할 거 같긴 한데, 일단 무사히 작품이 나와서 감독님이 인터뷰하는 것도 뿌듯하고, 뒤에 '퇴마록' 포스터가 걸려 있는 걸 보는 것도 너무 뿌듯하다.(웃음)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사회로 본 원작 팬분들, 원작을 모르고 보신 분들이 재밌게 보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도 뿌듯하다. 더 많은 분이 보시고, 많이 확실하게 뿌듯해지면 좋겠다.(웃음)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이번에 나온 작품 이후로 '퇴마록'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될 계획인지 대락적으로라도 귀띔해줄 수 있을까?
곽진영> 아주 길게부터 아주 짧게도 있다. 일단 최대한 지금 모두가 기억하는 <퇴마록>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드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퇴마록>은 정말 좋은 작품이자 재밌는 한국 작품이다. 우리가 지금 다시 <퇴마록>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모든 <퇴마록>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깔아놓은 떡밥들이 있다. 중요한 떡밥도 있다. 그걸 빨리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게 목표다.
▷ 그래서 후속편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곽진영> 최대한 빨리….
▷ 많이, 확실하게 뿌듯해지기 위해 많은 사람이 '퇴마록'을 볼 수 있도록 홍보해보자.
곽진영> "<퇴마록>의 액기스가 모인, 정수가 녹아 들어간 에피타이저!" 앞으로 '퇴마록' 프로젝트를 이어가겠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도 넣어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퇴마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액기스만 모아서 보여주자, 우리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정말 다 활활 불태워 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이고, 보고 나면 너무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말 모든 정수가 녹아 들어간 에피타이저 같은 작품이다. 이후에 이어질 다른 작품들도 속편들도 계속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