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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모녀는 왜 솔직하지 못할까…황슬기 감독 "정답 아닌 물음표"[엔딩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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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첫 번째 이야기> '홍이'의 시작, 그리고 '홍이'만의 엔딩

영화 '홍이' 황슬기 감독.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황슬기 감독. 에무필름즈 제공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달려온 다양한 영화인들과 영화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 홍이. 어느 날, 요양원에 있는 엄마 서희에게 목돈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엄마의 통장이 간절했던 홍이는 돈을 핑계로 엄마를 데려온다."
 
'홍이'의 시놉시스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영화는 시놉시스보다 더 강렬하고 더 생생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홍이가 왜 저런 상황에 놓였는지 궁금증을 갖게끔 한다. 그러나 홍이의 과거의 이야기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현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홍이'는 엔딩마저도 냉정하리만치 현실적이다. 그러나 2시간 동안 홍이를 마주하며 바라본 관객들은 오히려 더 홍이의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것이 바로 '홍이'만이 가진 힘이자, 황슬기 감독만의 응원 방식이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만난 황슬기 감독은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너무 설레고 떨리고 기쁘다. '어쩔수가없다'와 같은 날에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언제 같은 날에 만날 수 있겠나"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엄마와의 시간이 '홍이'가 되기까지

 
▷ '홍이'를 보면서 모녀 관계란, 가족이란 정말 너무 가까워서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고,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 반대로 행동할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딸 홍이와 엄마 서희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 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해졌다.
 
황슬기 감독(이하 황슬기)> 
원래 중년 여성이 나오는 밝은 코미디 풍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내가 돌보게 됐다. 돌봄과 간병을 매개로 엄마랑 긴밀해졌는데, 결론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에 도달했다.(웃음) 진짜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관계인데, 정말 솔직한 마음을 열기가 가장 어려운 관계도 모녀 관계가 아닐지 생각하게 됐다.
 
서울에 다시 와서 중단한 시나리오 쓰려는데 엄마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 거다. 내가 겪은 것도 있고, 간병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게 기존 시나리오와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제작사 세모시의 김세훈 대표님이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하는 게 맞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홍이'를 쓰게 됐다.
 
▷ 어머니께서는 이젠 건강은 괜찮아지신 걸까?
 
황슬기>
건강을 잘 회복하셨고, 영화도 보셨다.
 
▷ 정말 다행이다. 소소한 질문인데, 영화 속 바나나 식초는 감독의 추억이 담긴 설정인가?
 
황슬기> 
맞다. 내 경험이 섞인 소품이다. 어머니가 가끔 반찬을 해서 서울에 오신다. 어느 날은 바나나와 식초를 잔뜩 사 오셔서 뭐냐고 물었더니, TV에서 봤는데 바나나 식초가 다이어트에 좋다면서 내가 먹어야 한다고 하시더라.(웃음) 바리바리 사 오셨는데, 안 먹는다고 할 수 없어서 같이 몇 병을 담가서 옆집도 나눠줬다.
 
몇 년도 지난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찾아 나가다가 그게 생각났다. 엄마는 날 생각해서 만들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필요 없다고 하지 못해서 꾸역꾸역 먹는 게 단적으로 엄마와 나의 사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같았다. 심지어 초창기 제목도 '식초의 온도'였다. 식초가 계속 발효되는 과정도 시나리오에 있었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이해가 아니라 관심을, 정답이 아니라 물음표를

 
▷ 카메라는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적절하게 나눠서 홍이와 서희를 가까이에서 비추거나 멀리서 바라본다. 촬영 과정에서 중요하게 가져갔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
 
황슬기>
김지현 촬영 감독님과 콘셉트부터 시작해서 색 보정까지 진짜 긴밀하게 엄청 많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가장 주요하게 생각한 건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어떻게 담을지였다. 설명이 없고 말로 표현해 주지도 않는 영화다 보니 얼굴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클로즈업이 많다. 홍이와 서희는 서로 대화를 하는데, 합의점이 찾아지는 대화가 거의 없다. 거의 불통한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까지 거리감이 있으면 보는 사람에게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았다. 여백을 관객이 채워주는 영화인 만큼, 화면은 배우 얼굴로 채우기로 해서 클로즈업 위주의 핸드헬드를 이용했고, 인물의 얼굴이 담긴 촬영 콘셉트를 잡았다.
 
▷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라면 홍이의 전사를 보여주면서 홍이가 왜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어떻게든 이해시키려고 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홍이에 관해 '왜?'라는 물음을 갖고 바라보게 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황슬기>
길면 두 시간이고 짧으면 한 시간 반인 영화라는 매체에서 그걸 표현하기 진짜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거 어떤 삶을 살았든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그건 관객들의 생각으로 두고, 두 시간 동안 이 사람의 삶에 어떤 이유와 맥락이 있든 '그 자체'를 봐주시기를 바랐다. 설명하는 순간 인물을 이해하는 폭이 더 좁아진다. '왜 저래?' '뭐지?' '왤까?' 그 궁금함으로 인물을 이해한다기보다 관심을 주길,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물음표와 쉼표를 찾았으면 했다.

영화 '홍이' 황슬기 감독.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황슬기 감독. 에무필름즈 제공 

'홍이'라서 특별한 지점들

 
▷ 흔히 '치매' '치매 환자'라고 미디어에 나오는 걸 보면 특정적이고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홍이'에는 초기 단계 치매 환자가 나온다. 새로운 지점이어서 흥미로웠다.
 
황슬기>
기존 치매 환자의 모습을 답습하고 싶지 않아서 초기 단계로 설정했다. 조사하다 보니 초기는 사람마다 양상이 천차만별이었다. 본인의 개성이 남아있으면서도 병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지점이 있는데, 그게 이 병의 슬프고도 잔인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병과 달리 몸도 마음도 다 잃어가니까 말이다.
 
중증 치매 환자면 홍이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관객들이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 고정적인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그러나 초기 치매다 보니 홍이의 선택에 대한 의견이 나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 경험이기도 한데, 외할머니가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중간중간 깜빡하시는 정도지 다 분별하셨다. 그래서 100명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으면 다 다르고, 중증이 되기 전에는 제대로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을 담고 싶었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 보통의 다른 영화라면 결말에서 어떻게든 홍이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거란 암시를 던지며 끝났을 거다. 그러나 '홍이'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끝난다. 그렇기에 오히려 홍이가 일어나길 바라고, 홍이에게도 밝은 미래가 찾아들길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를 지금의 모습으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황슬기
> 원래는 엄마와 살던 집을 처분하고 어디론가 떠나 새롭게 출발하는 듯한 느낌으로 끝나는 거였다. 촬영까지 다 했는데 편집실에서 그 장면을 다 붙여보니까 홍이가 할법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세영 편집감독님과 이야기해서 홍이가 최종적으로 할법한 단계에서 끝을 맺기로 했다. 발가락에 엄마가 남긴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그게 희망일지 혹은 비극일지 모르는 모호한 얼굴로 끝내는 게 이 영화의 엔딩에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 이번에 '홍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나 고민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때를 어떻게 넘어왔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황슬기> 
홍이의 집이 당시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 집을 처음으로 촬영하는 날이었는데, 민원이 들어와서 경찰이 오고 관리인께서 촬영 못 하게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제작사 대표님이 그분들을 데리고 수습하러 나가면서 '슬기야, 너 어서 가서 찍어'라고 하셨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찍었다.(웃음) 그 장면이 홍이가 엄마 서희의 발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장면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제작진이 없었으면 영화를 못 찍었을 거란 생각을 많이 한다. 적은 예산에 회차도 많지 않은 와중에 제작진 덕분에 정말 똘똘 뭉쳐서 알뜰살뜰 찍어낼 수 있었다. 내가 한 건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모니터 본 것밖에 없었다. 다른 걸 신경 쓰지 않도록 제반을 마련해 준 스태프들에게 정말 고맙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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