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 주한미군 장병이 목표물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 연합뉴스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와 관련해 국방부는 한미간 논의된 사항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주한미군 일부 철수해 다른 지역에"…국방부 "논의된 사항 전혀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수천 명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미 국방부가 개발 중인 선택지는 약 4500명의 병력을 철수해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아이디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거래에 대한 비공식 정책 검토의 일환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준비되고 있다"고 전했다.
WSJ가 인용한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이 방안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대응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와 감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기에도 한차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적이 있다. 지난해 대선과정 중에도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수시로 언급했다.
그는 지난 4월 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지불을 논의했다"면서 무역협상과 연계할 의도도 비췄다.
이후 무역협상과 방위 문제를 구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는 했지만 무역협상 압박의 지렛대로 이용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할 경우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미국이 향후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일단 선을 그었다. 우리 국방부는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도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발표할 정책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한미군 감축 관련 논의 확장?…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일환
주한미군과 스트라이커 장갑차. 연합뉴스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후로 주한미군 재배치가 자주 언급돼온 만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한 외교안보 관계자는 "미국의 주한미군 역할 조정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개념으로 오래 전부터 고려돼왔다"고 설명했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쓰임은 더이상 '대북억지력'에 멈추지 않는다.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을 중국의 대만침공 견제 등 역내 분쟁에 개입하는 역할로 확장하는 방안을 구상해왔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15일 "주한미군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더 큰 인도·태평양 전략의 작은 부분으로서 역내 작전과 활동, 투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역시 지난해부터 미국은 중국을 상대하는데 집중하고 북한에 대한 위협은 한국이 스스로 대응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한미군 철수를 '금기'로 보고 대응해왔다. 북한이 공격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러시아 파병 이후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은 핵미사일은 물론 재래식 전력 수준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이 북한에 '한미동맹 약화'의 신호로 받아들여 지면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도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국방부가 공식 부인했기 때문에 추정보도가 아닌가 싶다"면서 "민주당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이어가겠다. 더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강한 우려를 밝히면서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억제하는 강력한 힘이자, 한미동맹의 핵심 축"이라며 "대한민국이 전방의 부담을 스스로 떠안게 되는 구조로 재편될 수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더이상 '금기'는 없어…전문가들 "선제적으로 협상해야"
주한미군 축소, 나아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을 둘러싸고 한미간 긴밀한 소통이 시급하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한미동맹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주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전력으로 우리 군과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다"며 "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미측과 지속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관련한 한미간 온도차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선제적으로 우리 국익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수 있는 안을 제시해 협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주한미군 해외 배치의 유연성을 갖고 싶어했는데 북한의 오판이 있을 것을 우려해, 양국정부의 합의가 필요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합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다'로, 우리 입장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에 방점이 찍혀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안된다고 금기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차피 일부 전략적 유연성을 완화해야 한다면 오히려 선제적으로 '전략적 유연성 2.0'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한미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좀더 반영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