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압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AP통신은 29일(현지시간) 고위 국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주한미군 4500명 감축 보도에 대해 지난 23일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했지만 불과 엿새 만에 불씨가 되살아난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은 1970년대 미국 닉슨 행정부와 90년대 부시 행정부에서 대폭 실행되는 등 전례가 있다. 당시에도 안보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전략적 유연성'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과 맞물려 더 복잡한 양상이다.
특히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 역할을 중국 억제로 바꾸고 대북 방어는 한국군에 맡기려 한다는 점에서 전시작전권전환 문제와도 결부된다.
연합뉴스문제는 미국의 전략 변화와 이에 따른 동맹에 대한 요구가 다소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먼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주한미군 2만 8500명 가운데 약 4500명을 미국 영토인 괌 등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를 부인했지만, 그 배경과 관련해 중국 견제나 방위비 분담금 압박용, 대북협상용 등 다양한 관측이 이어졌다. 예컨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병력 일부를 중국 견제용으로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노림수도 함께 깔려있다.
미국으로선 주한미군을 어디에 배치하든 중국 억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여기에다 군비 부담까지 한국이 지게 하는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역대 한국 정부가 보수·진보 구분 없이 주한미군 감축 앞에선 거의 전전긍긍해온 사정과 관련 있다. 그에 따른 충격을 우려한 나머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포함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현상유지에 급급해온 것이다. 미국과 협상이 비대칭적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김명수 합참의장(왼쪽)과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 연합뉴스하지만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국 억제로 바뀌는 것은 기존 셈법과 차원을 달리 하는 문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 요구를 수용한 것이지만, 당시는 탈냉전기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냉전기 미국이 주적으로 삼은 중국 견제에 주한미군이 동원된다면 한국도 중국의 군사 표적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선 차라리 주한미군 일부가 감축되더라도 괌 등에 재배치되는 게 우리로선 동맹의 연루 위험을 줄이는 길일 수 있다.
이와 관련,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5일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하며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안보 전문가는 "우리로선 썩 유쾌한 비유가 아니지만,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명분과 군 이기주의(주한미군사령관의 육군 대장 계급 유지) 등의 목적이 복합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주한미군 감축·이전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일이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지난 14일 발표한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에서 기존의 한미동맹 최우선 전략의 전면 수정을 주장하며 일례로 "중국 견제로 주한미군 역할을 전환한다면 과연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