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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 미술관의 회춘(回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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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展, 90일만에 관람객 50만 명 돌파
2030 주도, 일시적 허영 아닌 일상의 감동으로
유명 셀럽도 긍정적 영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론 뮤익>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론 뮤익>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로비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장이 아니다. 삼청동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다.
 
13일 끝나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67)의 회고전에 막판 관람객들이 몰리고 있다. 4월 개막 이후 하루 평균 5590명, 총 50만 명 이상이 관람해 올해 최대 흥행작이 될 전망이다.
 
몇 년 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매번 20만 명 이상을 동원했고, 지난 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전은 15만 명이 감상했다.
 
한국 미술관에 훈풍을 넘어 열풍이 불고 있다.

 

미술관, 핫플이 되다


1958년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찾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 출처=e영상역사관1958년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찾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 출처=e영상역사관
한국에서 미술관은 과거에도 인기 장소였다. 정부가 주관했던 국전(國展,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상작 전시회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새로운 스타 화가들의 등장에 미술계는 물론 국민과 입상자를 배출한 지역사회, 교육계, 정치권까지 주목하는 국가적 이벤트였다.
 
7,80년대 당시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장사진을 쳤다. 가족이나 연인들은 사진을 찍고 관련 굿즈를 사는 등 앞서간 인스타족(族)이었다.
 
컬러TV를 비롯한 영상의 시대가 오면서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으며 오래 숨죽였던 미술관은 첨단 IT 시대를 맞아 다시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던 복고풍은 젊은층에게 미지의 낯선 매력으로 다가가며 레트로(Retro) 문화를 유행시켰다. 2,30대들이 흑백사진 느낌의 선술집, 노포를 찾아다니면서 인쇄소들이 모여있던 을지로는 힙지로가 됐다. 익선동, 용리단길, 숙대앞 등도 젊은이로 북적댄다. 그리고 영트로(Young+Retro)들은 어렵고 따분하고 고루했던 미술관을 새로운 '핫플'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 젊어지다


<론 뮤익>전에 전시된 '침대에서'<론 뮤익>전에 전시된 '침대에서'
코로나 이후 한국 미술관의 부흥은 2030에 빚지고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색은 까맣고 노랗고 빨갛게 변했다. 가족이나 가정주부, 노부부 관람객들은 연인이나 친구 등 젊은이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작품을 배경으로 한 인증샷을 올리면서 문화적 얼리어댑터(Early Adopter) 본성을 자랑한다.
 
<론 뮤익>전의 경우 2030 관람객이 70%나 됐고 국립현대미술관 SNS 채널의 관련 게시물 노출 수는 325만 건이 넘었다.
 
이런 흐름에서 미술관들은 인스타 감성에 부응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회화나 조각뿐 아니라 설치 미술 등으로 장르가 확대되는 등 2030이 미술관의 변화를 강하게 추동해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도슨트(Docent,미술전시 해설가)는 "<론 뮤익>전은 2030이 몰리면서 오픈런이 벌어지고 몇 시간 동안 줄을 서는 등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젊은 관람객의 니즈를 적극 수용해 열린미술관으로 방향과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의 환호가 미술관을 춤추게 하고 있다.

 

미술관, 일상이 되다

 
2030이 SNS에 미술관 사진을 경쟁적으로 올리는 행위를 일시적 유행으로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많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의 문화적 허영이 발동한 플렉스(Flex)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작품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공명하기보다 자기 과시를 위한 사진 촬영이 먼저라는 우려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젋은층이 미술관을 찾는 현상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욱 두드려졌다"면서 "이미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잘라말했다. 또 "SNS는 2030에게는 삶의 일부가 된 가장 익숙하고 효율적인 채널"이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알리는 것은 과시가 아니라 소통의 행위"라고 말했다.
 
2019년 10월 호암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여정>에서 김환기의 그림을 감상하는 RM. 출처=방탄소년단 SNS2019년 10월 호암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여정>에서 김환기의 그림을 감상하는 RM. 출처=방탄소년단 SNS
젊은층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들의 미술 사랑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미술계가 대놓고 감사를 표시하는 BTS의 리더 RM(김남준·30)은 미술 애호가를 넘어 수집가가 됐다. 그가 다녀간 뒤 사진을 게시한 미술관은 그를 따라 RM투어를 하는 아미(BTS 팬덤)들로 북적인다. RM이 작품을 구매하면 팬들도 그 작가의 작품을 산다.
 
미술계에는 'RM 없는 세상이 걱정'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돈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이 모아온 소장품들로 개인 미술관을 설립한다고 한다.-
 
미술이 패션이나 맛집, 여행, 콘서트, 스포츠처럼 젊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구성 요소가 됐다. 반짝 유행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녹아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론 뮤익>전은 내일 끝나지만 옆 전시실에선 상설전 3부작 중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가 내년 5월까지 계속된다. 또 과천관에선 나머지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Ⅱ>가 2027년 6월까지 열린다.

김환기, 윤형근, 박서보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세계에 빠져보는 데 단돈 2000~3000원이면 족하다. 심지어 만24세 이하는 무료다.
 
젊어진 미술관에서 우리도 회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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