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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사 그림자 뒤에 감춰진 간호사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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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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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대한전담간호사회 회장. 본인 제공이미숙 대한전담간호사회 회장. 본인 제공
"수술실에 들어가 메스를 쥐지만, 나는 의료기록 어디에도 없다. 환자 앞에 서지만, 내 이름은 감춰진다. 사고가 나면 내가 책임지지만, 누구도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고백이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일해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다. "의사의 지시 없이 직접 처치를 할 수밖에 없을 때도 많아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런데 그 책임은 전부 저희 몫이죠."
 
이처럼 PA 간호사는 오랫동안 의료현장의 그늘에서 묵묵히 버텨왔다. 명확한 법적 지위도, 제도적 보호도 없이 의사의 진료를 돕거나 때로는 대신해 온 이들. 그러나 그 대가는 냉혹했다. 스스로를 '슬픈 간호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PA 간호사는 제도의 공백 속에서 태어났다. 병원은 인력 부족과 업무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간호사에게 의사의 업무 일부를 떠넘겼다. 수술 준비, 처치, 약 처방 등 고도의 전문적 행위를 수행하지만, 법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간호사일 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체계적인 교육도, 자격 기준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처음 PA 업무 맡았을 때,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참고할 지침도 없었어요. 선배들한테 몇 번 보고 따라하다가 바로 환자 앞에 섰죠.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에요."
 
환자는 진료를 받으면서도, 이 간호사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만에 하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교육도 없이 일선에 내몰린 간호사 개인에게 전가된다. 병원과 의사는 법적 책임에서 한 발 비켜선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보이지 않는 간호사'에 의존하는 의료 시스템은 환자 안전의 사각지대를 뜻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를 오랜 시간 방치해왔다. 병원의 이익과 의사의 편의에 맞춘 구조 속에서 간호사와 환자는 늘 후순위였다.
 
간호계는 수년 전부터 이 문제를 제도화하고자 목소리를 내왔다. 그리고 지난 6월 21일, 간호법이 마침내 시행되며 변화의 문이 열렸다. 많은 간호사들이 기대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책임을 감당할 자격을 갖춘 채 환자를 마주할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그 기대는 보건복지부의 하위법령안 앞에서 무너졌다.
 
정부는 진료지원업무에 대한 교육과 자격관리 권한을 또다시 병원과 의사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이는 오히려 불법과 편법의 구조를 묵인하고, 기득권에게 제도 운영의 열쇠를 다시 쥐여주는 꼴이다.
 
진료지원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의 교육과 자격 관리는 이해관계자인 병원이 아닌, 간호사의 업무와 전문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대한간호협회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의료의 질은 교육과 관리로부터 비롯된다. 환자에게 안전하고 전문적인 진료를 제공하려면, 진료지원업무 간호사에 대한 표준화된 교육과 자격 기준, 공공적 감독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총괄할 전문 단체는 간호협회다.
 
병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기관에 교육과 평가 권한을 맡긴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현장의 간호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제대로 보이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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