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시 120 다산콜 상담 직원은 민원인의 상습적인 욕설, 반말, 비하 발언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끝에 해당 민원인을 고소했다. 이 민원인은 2023년 징역 8개월의 실형을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또 다른 사례로, 한 승객은 지하철 지연에 불만을 품고 서울 지하철 고객센터에 욕설과 반말로 6개월 동안 38차례 전화하고, 843회의 문자를 보내 상담 직원을 괴롭혔다가 2021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심한 경우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까지 발생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2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된 법률은 전화 민원 처리 시 △통화 시작 전 음성안내 △폭언 여부와 무관한 전수녹음 △자동·강제 통화 종료 기능을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폭언 예방 음성안내만을 규정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력한 조치로, 기관장에게 법적 이행 책임까지 부여한 파격적 대응이었다.
그렇다면 현장은 어떨까?
100% 녹음 완료? 현장은 소수만 적용
행안부는 지난 3월 보도자료를 통해 "악성민원 대응 공무원 보호를 위한 현장 조치가 차질 없이 안착됐다"고 밝혔다.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교육청 등 3934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전화 민원 전수녹음 도입률이 평균 100%에 가깝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수녹음이 도입됐다는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지능형 폭언 감지 대응 시스템'을 민원 응대 전화에 '시범' 설치했다.
이 시스템은 민원인의 폭언을 자동 감지해 응대자의 컴퓨터에 팝업창을 띄우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경고 멘트가 자동 송출된다. 이후에도 폭언이 이어지면 통화는 자동 종료된다. 또 통화 시간이 20분을 초과할 경우 자동 안내 멘트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는 기능도 탑재됐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설치된 전화를 사용하는 서울시 공무원은 30~40명에 불과하다. 전체 서울시 공무원의 0.21%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과 공사 등은 제외된 수치다.
다만 서울시는 해당 시스템 도입 이후 직원 만족도가 평균 93점에 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입 이전보다 직원들의 정신적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도입률 100%"는 허상…공무원 대다수는 사각지대
연합뉴스이처럼 악성 민원 대응 시스템의 효과는 분명하지만, 행안부의 '도입률 100%' 주장은 실제와 거리가 있다. 보호 장치의 혜택을 받는 공무원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민원처리법 제2조는 정부 업무를 위임·위탁받은 법인, 단체, 출자·출연기관까지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행안부의 이행 실태 조사는 행정기관에만 국한돼 있다. 실제로는 민간위탁기관에서 폭언과 협박 등 악성 민원이 더 자주 발생한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민원처리법은 각 공공기관이 관련 내용을 자체 규정에 반영해 시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대다수 기관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CBS가 기획재정부 관리 대상인 331개 공공기관의 민원처리 규정을 전수 조사한 결과, 개정 내용을 모두 반영한 곳은 23개 기관(7%)에 불과했다. 지방공기업과 공단 등 행안부 소관 164개 기관 가운데 반영 기관도 11곳(7%)뿐이었다.
실효성 위해선 강제 장치 필수
전문가들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과 상담 직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면, 이행을 담보할 감독과 처벌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