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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尹 핑계대는 의대생들의 대단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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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의대생들은)아직 사과도 안 했잖아요"

'학칙을 개정해서라도 학업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우리 사회 일부의 움직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인 건 비단 필자가 아는 지인 뿐이 아니다.

최근 만난 A씨는 모든 병원이 일손부족에 허덕이던 때, 직접 주사제를 구입해야 했고 또 수술방이 아닌 의료폐기물이 거득히 쌓인 이상한 곳에서 주치의로부터 황반변성 주사를 맞았던 일을 떠올리며 넌더리를 냈다. 그의 병은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중병은 아니었지만 의료공백의 현장이 몹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거의 반사적으로 "사과도 안했잖아요"란 말이 나온 건 당연해 보였다.

우리 국민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의사가 떠난 그날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를. 혹여 집안에 누군가 아프다는 말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원은 있으되 가봤자 병을 고치기 어렵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의료대란 때 가장 심각했던 상황은 암을 발견하고도 제때 수술을 못받는 경우였다. 보호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웠다.

폐암환자가 수술일정을 제 때 잡지못해 숨지거나 다발성 중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을 가도 받아줄 의료진이 없어 병원 뺑뺑이를 돌다가 목숨을 잃은 억울한 영혼이 수도 없었다.

의사들은 여전히 파업중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의료공백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의 B 상급종합병원 관계자의 말을 빌면, 병원에 일할 사람이 없어 예약 자체를 적게 받는 반면, 최고의 암진료 역량을 가진 병원으로 소문이 나 환자가 몰리다보니 외래진료 일정이 1~2년 뒤로 잡힌다고 한다. 받는 예약건수가 절반 이상 줄어드니 진료를 한 번 보는게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

예약날짜를 기다리고 있기엔 병세가 너무 위중하다 보니 기다리다 못해 주변 병의원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이 병원의 한 의료진은 "다른 데로 가거나 기다리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고 했다. 의료대란의 부작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국민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전공의·의대생들이 국민들이 겪는 고통의 절반이라도 헤아리는 참된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조건 없이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조건을 따질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싸움에 이긴 측이 개선하듯이 국회나 새정부를 향해 '수업 복귀할테니 대책 만들어 주시오'식의 요구를 내놓는 모습이 국민 가슴의 피멍은 안중에 없다. 이런 모습을 그냥 바라 보는 것조차 불편하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 발표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 발표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복귀기자회견에서 의대학생들은 "복귀 후 압축이나 날림 없이 제대로 교육받겠다"고 말했지만, 이들의 주장처럼 상황이 간단하지가 않다. 1년 5개월동안 학교를 떠난 사이 파업 참가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급대상자로 확정됐다. 교육부는 유급을 면하려면 지난 5월초까지 수업에 복귀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복귀하지 않는 학생은 학칙에 따라 유급이나 제적하도록 지침을 내려보냈다. 그 숫자가 8305명이다.

의대 본과생들은 연(年) 40주 이상의 전공수업을 받아야 하지만 이제는 남은 시간이 부족해 어떻게 해도 룰대로면 40주를 채울 수가 없게 됐다.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보면 수업일수를 채울 수도 없고 파업에 따른 불이익을 피할 길도 없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의대생들은 "학사일정 정상화를 통해 의대생들이 교육에 복귀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복귀의 조건을 내걸었다. 학사유연화가 아니다고 강변하지만 남은 시간이 없는데 전공수업을 이수하겠다고 하니 학사유연화와 무엇이 다른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교육부는 정권교체 후 달라진 분위기를 의식한 듯 고심에 빠진 모습을 보였지만, 대통령의 '수업 복귀 후속조치 마련' 지시가 떨어지자 "행정·재정적 뒷받침을 하겠다"고 나섰다.

언젠가는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 가야 한다. 의료시스템도 정상화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 피해도 끝이 날 테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특혜를 주는 방식이라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절하고 나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의대생이지만 정부의 권유를 수용해 미리 학업에 복귀한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미리 복귀한 학생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의료대란의 빠른 해결을 바랐을 수도, 공부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휴업 투쟁 스크럼에서 이탈할 땐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따돌림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무릅쓴 결과가 동일하다면 앞으로 누군들 교육당국의 안내를 따를 것인지 의문이다.
 
이번 의료대란의 본질만 놓고 보면 의대생이 2천명이나 늘어나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결국 먹고 살기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직역이기주의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주장을 펼치는 건 자유지만 의료인들의 특수한 지위를 나몰라라 한 것까지 용인될 것이란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한국사회의 병원시스템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이어서 이를 팽개친 건 직업윤리위반이자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였다. 현행 노조법·의료법은 환자의 생명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고 어길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돼 있다. 모두가 국민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정체성이 다른 걸 감안하더라도 이런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 다른 이슈로 정부정책에 반발한 집단휴업이 이뤄질 경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 뻔하다.

의대생들은 윤석열정부의 잘못된 정책 수립과 집행을 막기 위한 집단행동이었고 그 잘못은 전 정권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책 추진 당시 행해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의대증원의 필요성 자체에는 찬성하는 국민들이 더 많았던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대란이 정권교체와 맞물리면서 요행히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벌인 집단행동은 의대증원 백지화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산업현장에서 매년 접하게 되는 노조파업에서도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투쟁의 과정에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면 룰과 원칙에 따라 책임질 건 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아무리 대의와 명분을 갖춘 싸움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의 건강과 목숨을 볼모로 위험한 싸움을 벌이고 적지 않은 국민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면 원인제공의 정도를 떠나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보여주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그러나 아직 전공의나 의대생들이 공식적으로 사과 하지 않았다.

지난주 의사회관에서 기자회견 당시 연출된 풍경은 한참 낯설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국민들의 불편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사태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것이 집권당 일테고 교육위와 복지위원회를 중심으로 물밑 교섭이 한창이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회 권력을 병풍세운 것 같은 느낌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국회의 권력자들을 대동한 걸 보면 '학사유연화는 없다'는 당시 교육부의 강고한 방침을 피해갈 길이 묘연하다고 내부 판단을 했는 지도 모른다. 새 정부의 정상화 방침이 섰고 교육부는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했고 학생들은 원하는 걸 얻은 채 의료대란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목숨을 볼모잡고도 한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태도와 이에 여러 수단을 동원한 한국 최고엘리트 집단을 국민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지 심히 궁금하다. 의료정상화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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