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산 전기버스에 정부 보조금이 쏠리면서 국내 업체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던 관계 당국이 부랴부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허술한 보조금 지급 체계로 논란이 됐던 이 사안과 관련해 유관 부처 간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던 '칸막이' 문제까지 언급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운수 업체에 막대한 전기버스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면서도 구매 투명성 감시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감시 사각지대에서 구매자인 운수 업체와 판매자인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사 간 '검은 거래'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음에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당국은 이 대통령의 '불호령'에 뒤늦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李대통령 "中전기버스에 보조금 쏠려 국산 죽어나"
황진환 기자21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정책 당국은 기계적인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 현실을 문제 삼은 이 대통령의 지난 6월 10일 국무회의 지적과 맞물려 전기 저상버스 보조금 개편안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회의록을 보면 이 대통령은 "중국 같은 경우에는 중국 제품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제품에 보조금을 다 줘서 국내 전기버스 업체가 죽어버렸다는데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배터리의 품질과 성능의 안전성을 기준으로 해서 보조금을 아예 안 주거나 차등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했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내 업계에서 전기버스 생산과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보조금 정책을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며 "그 문제를 정부에서 당연히 인식했을 텐데, 몇 년 동안 조정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질타했다.
中 전기버스 확장세 이면엔…보조금 노린 업체 '뒷거래' 횡행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사가 운수 업체와 부당한 뒷거래를 통해 혈세인 보조금을 빨아들이며 서로 잇속을 챙기고 있는 정황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CBS노컷뉴스의 연속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관련 기사: [단독]한국 삼킨 中전기버스, 그 뒤엔 '검은거래' 있었다) 이 대통령 지적대로 중국산 전기버스는 불과 몇 년 사이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국산을 추월했는데, 해당 보도는 그 이면을 조명했다.
중국산 전기버스의 가격은 3억 원대로, 구매 과정에서 통상 △환경부 전기차 보조금 최대 7천만 원 △국토부 저상버스 보조금 9천만 원(국비·지방비 합산)에 지자체 보조금까지 지원된다. 지자체 공고에 맞춰 구매자인 운수 업체가 판매자인 수입사와 계약을 맺고 필요 서류를 제출하면 절차에 따라 보조금이 지급된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운수 업체가 수입사에 최소 1억 원은 자체 지불해야 한다. 이 자부담금이 지불된 경우에 한해 지자체에서 환경부·국토부 지급분을 포함한 전체 보조금(최대 차값의 70%)을 수입사에 지급하는 구조다.
이 대목에 주목한 일부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사는 운수 업체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최소 1억 원의 부담을 뒤에서 덜어주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묘하게 공략했다. 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기도 하고, 1억 원을 다 지불받은 것처럼 서류만 꾸민 채 뒤에서 수천만 원을 깎아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개 수입사가 부당하게 수령한 보조금만 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 외에도 사무실 리모델링 비용 지급, 고급 수입차 리스 등 다양한 리베이트 제공을 넘어 아예 운수 업체를 인수한 수입사 케이스까지 포착되면서 부당 거래 정황을 둘러싼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뒷짐 지던 관계당국…대통령 일침에 부랴부랴 "대책 검토"

수입사와 운수 업체가 이처럼 대담하게 보조금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의 거래 실태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은 보조금 지급 주체들의 허술한 관리·감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안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지 반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사전 감시 강화책은 없다는 평가다.
당초 환경부는 지난 1월 "보도로 드러난 전기버스 업체의 보조금 부정수급 문제를 올해 들어 대대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최근에는 "사인(私人) 간의 거래"라는 이유를 들며 실태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환경부는 집행 부처라 권한 상 자체 조사도 어렵고, 보조금 관련 필요 서류도 지자체가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환경부는 올해 1월 공고한 '2025년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에 전기버스 제조·수입사와 운수업체가 상법상 '특수관계'인 사실이 드러날 경우 보조금 지급을 제한한다는 취지의 벌칙 조항은 새로 마련했다. 이 조항이 실제 적용된 업체도 최소 3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 설명도 환경부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보조금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강화 등 조치가 있었는지 묻자 "별도 조치는 없었다"며 "(서류를 검토하는) 지자체를 믿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조사기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현재로서는 적극 대응하기 힘들다. 조사 결과 보조금 부정 수급이라고 판단이 나면 법에 따라 교부 취소나 환수 절차를 진행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지자체를 포함한 보조금 지급 주체들 간 관리·감독 공조를 위한 논의 테이블도 마련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돼 여전히 사전 감시보다는 '사후 대응'에 초점을 맞춘 소극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문제 언급 말미에 "문제가 있으면 관련 부처들끼리 모여서 토론을 하고 결판을 내야 하는데 몇 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살았던 것 아닌가"라며 "국무회의나 합동 회의를 하는 이유는 자기 부처를 넘어서는 분야에 대해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라는 것으로, 이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부처는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자 후속 대책을 고심하는 기류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경쟁력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런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고, 국토부 관계자는 "저상버스 보조금 차등 지급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