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건설공사 현장을 방문해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이재명 대통령이 철도기관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김영훈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계는 일단 기대가 큰 반면, 재계는 노동계 편향을 경계하고 있다. 파격 인사로 주목받은 만큼 산적한 노동 분야 숙원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취임 첫날부터 불시 점검 나선 노동부 장관…첫 인사도 현장 중심
김 장관은 22일 업무 시작 첫날부터 건설현장 불시점검에 나서며 파격행보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다수의 법령 위반을 직접 잡아내기도 했다.
김 장관은 현장에서 "대한민국이 더 이상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 안전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반복되는 후진국형 사고와 차별에 기인한 재해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선 민주화, 노동운동가들이 잠들어있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을 참배했다. 조만간 우려를 의식한 듯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를 만날 예정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양대노총도 연달아 방문할 계획이다.
또 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인사로 직무수행을 가까이서 보좌할 장관 비서관에 비고시 출신인 윤권상 현 구미지청장 임명하기도 했다. 최일선에서 실무형 기관장을 주요 직위에 앉히며 노동계와의 소통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 노사 균형 어떻게 찾을지가 관건
민주노총이 2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즉각 통과를 촉구하면서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하지만 김 장관의 첫 과제부터가 만만치 않다. 노동계는 김 장관에게 그의 첫 업무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즉 '노란봉투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두 차례 거부됐던 개정안을 이번에는 실질적인 진전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하청노동자의 교섭권과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이 핵심이다.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경영계는 이 법안이 "산업현장을 마비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최근 국회를 찾아 여당 정책위의장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입법 철회를 요청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수백 개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경우 대응 불가"라는 점과 함께 "위헌 소지도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당은 8월 임시국회 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하되,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개념을 제한하거나 시행령으로 교섭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시행 시기를 유예해 충격을 완화하는 절충안도 거론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노동계는 "법안 후퇴"라며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구성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 함께 국회 본청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및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2·3조가 개정되더라도 시행 시기를 늦추고, 하청노조와 원청과의 교섭 대상 및 방법 절차 등을 시행령에 담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사용자들의 부당한 요구를 시행령으로 받아들인다면 노조법 개정의 취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기업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노란봉투법이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사 양쪽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장관이 맞닥뜨린 것은 수 많은 현안뿐 아니라 한국 노동계의 근본 문제들도 있다. 바로 산업재해 사망률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과 사망 재해율이 가장 높은 불명예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노동부에 예방적 안전 점검 강화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망 사고를 예로 들며 "일터가 죽음의 현장이 되어선 안 된다.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근로감독관 300명 추가 충원과 지방 공무원에 대한 특별사법경찰 자격 부여를 통해 현장 감시 체계 강화를 주문했다.
김 장관이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주목된다. 처음으로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김 장관은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건설현장을 불시 점검했듯 주 1회 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그 결과를 매주 국무회의에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부터 강조해 온 '현장 중심의 안전 관리'가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 관전 포인트다.
또 중대재해처벌법과의 연계 등 제도적 수단을 어떻게 다듬을지도 지켜봐야할 지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제도적 장치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 마련됐지만, 현장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는 흔들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한 처벌보다 현장 실효성 확보가 김 장관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 완성 시키나…노동계 기대 큰 만큼 실망 클 수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김 장관에 대한 기대를 공식 성명으로 표출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노조 무력화 시도와 반노동 정책을 종식시키고, 실질적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국정 대전환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고, 한국노총은 "정년연장, 플랫폼 노동자 보호, 노조할 권리 등 산적한 과제를 진영 논리 없이 풀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대는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김 장관은 "산업별 다양한 거버넌스를 통해 민주노총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대화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방안은 아직 불투명하다.
김 장관은 민주노총 위원장,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거쳐 20대 대선에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21대 대선에서도 노동 공약을 뒷받침했다. 현장과 정치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산적한 노동 현안과 이재명 정부의 정책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