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인 유학생 비자를 적극 취소하겠다던 정책을 약 3달 만에 완전히 뒤집었다. 그는 지난달 8월 25일 중국인 유학생 6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최고치였던 2019년~2020년의 37만여 명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에 너무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유학생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규모는 60만 명을 언급했다.
지난 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 때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60만 명은 놀랄만한 숫자다.
현재 미국내 중국 유학생은 모두 27만여 명이다. 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웬만하면 다 받아주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이나 학자들이 자국의 첨단 기술과 핵심 정보를 빼돌린다고 의심해왔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5월 중국 유학생의 비자를 적극 취소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3달 만에 완전히 뒤집어졌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방문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입장도 빈번하게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유학생 대폭 수용 방침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1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 만찬 공연이 끝난 뒤 시진핑 주석과 악수를 하는 모습. 미국 백악관 자료실
하루 뒤인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 회의 직후 중국 유학생 정책의 번복에 대해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는 "외국 학생들을 받지 않으면, 미국의 대학 시스템이 폭망할 것(our college system would go to hell very quickly)"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늘 제기됐던 대학의 재정난을 정책 급변경의 이유로 대는 것은 좀 군색하다.
그보다는 중국의 끈질긴 요구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환영했다. 궈지아쿤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달 27일 "교육 교류와 협력이 국가와 국민 간의 소통 및 이해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논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정책을 갑자기 뒤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초에는 엔비디아의 AI용 칩 H20의 판매를 돌연 허용했다. 중국에는 H20 칩을 안 팔겠다고 공언한지 불과 3개월 만이다.
하워드 러트니 상무장관은 H20의 사양이 낮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지난달 15일 "중국에 AI칩을 팔지 말고 임대해야 한다"(America should rent, not sell, AI chips to China)고 조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국의 기술 패권은 중국의 추격으로 점점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이번에는 상거래 회사에서 출발한 중국 알리바바가 자체 AI 칩을 개발해 시험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보잉사의 부품 공급을 한때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54%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중국이 희토류 제품의 공급 중단으로 보복한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오래지 않아 항공기의 부품 공급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관세를 145%까지 부과하며 중국과 '치킨게임'을 벌였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Everett)에 위치한 보잉 공장 내부 모습. 보잉사(Boing) 페이스북 캡처미국이 중국에 대해 145%의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가 30%로 대폭 깎아준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중 관세 협상의 뒷얘기를 일부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4월 2일 상호관세 54% 부과를 발표하자) 중국이 희토류 자석의 수출 중단으로 반격을 해왔다.
이에 미국은 중국에 보잉 항공기의 부품 공급을 끊는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때문에 중국의 보잉 항공기 200대가 뜨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항공기의 부품 공급 중단을 길게 유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더 강력한 관세카드를 꺼냈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이후 중국에 대한 관세를 145%까지 올렸다. 하지만 '치킨게임' 끝에 30%로 뚝 떨어졌다. 처음 요구했던 54%보다 더 낮아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영리하게도 희토류 자석을 독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희토류 반격에 '관세폭탄'도 힘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희토류 자석 부족 사태가 1년 정도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이다. 전문가들은 더 길게 보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듯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과 경제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을 만나고 싶다는 말도 반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에는 "(중국) 학생들을 미국에 못 오게 하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유학생들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지난 6월 시진핑 주석과 통화를 하면서 본인이 직접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굴욕적 저자세를 보이자 트럼프 지지자들조차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지난 달 26일, '트럼프의 중국 유학생 발표에 대해 마가주의자들이 분노하고 있다''(MAGA rages over Trump's Chinese students announcement)고 보도했다.
이틀 뒤인28일, 백악관은 FOX TV를 통해, "60만 명은 2년치 비자 발급 건수를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진심은 이미 들통이 난 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중 연대 성격의 쿼드(QUAD) 참가국인 인도에 대해 50%의 상호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했다. 이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와 거리가 멀어졌다. 사진은 지난 2월 13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인도 정상회담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미국이 인도에 대해 50%의 관세 폭탄을 투하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견제 의지 자체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인도에 보복성 관세를 물리는 명목상 이유는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 대해서는 눈을 딱 감아주고 있다.
인도는 4개국 연대 기구인 쿼드(QUAD)의 회원국이다. 일본, 호주와 함께 미국 편에 서서 중국 견제에 앞장선 나라다. 그런데도 돌아온 것은 푸대접이다.
라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리고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손을 잡았다. 시진핑의 어부지리다.
만약 인도가 쿼드에서 발을 뺀다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흔들리게 된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려던 미국의 구상에 구멍이 뚤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푸틴 대통령, 시진핑 주석 등과 잘 지내고 있으며,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초강대국끼리의 흥정과 밀약이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확대정상회의 모습. 미국 백악관 자료실트럼프 1기 때 미국은 '중국 때리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2기의 양상은 다르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에도 관대해지고 있다.
이와 비교해 인도뿐 아니라 EU와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는 엄격하다. 유일한 기준은 미국의 이익에 누가 더 도움이 되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중국의 패권 도전을 꺾어야 한다. 그렇지만 초강대국끼리의 흥정과 야합, 나눠먹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트럼프가 지난 달 26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습관처럼 한 아래 발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매우 좋다. 두 나라가 주요 강대국이고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내가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일 베이징의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게 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말했듯이, 북·중·러 정상이 한 자리에 모여 손을 잡는 것은 우리에게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은 우리와 다를 수도 있다.
앞으로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이 예상치 못한 합의나 밀약을 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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