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임금체불을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닌 '임금절도'로 간주하고 강도 높은 종합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하반기 4개월 집중관리기간을 설정하고, 이번 정부 임기 내 임금체불을 현재 2조원 대에서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로 총력 대응에 나선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임금체불 근절 대책' 발표하고 "임금체불은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이며 노동존중사회의 첫 걸음은 임금체불 근절"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김 장관의 보고를 받고 임금 체불 문제에 대해 "노예도 아니고 일시키고 떼먹고"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처벌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며 "제재가 약해서인데 중대범죄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대책에 힘을 실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 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은 2조 448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한 1조 1005억 원에 달해,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체불액의 약 절반은 제조업(27.4%)과 건설업(20.8%)에 집중되어 있고,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체불액의 66.9%가 발생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체불도 전년 대비 51% 이상 증가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노동부는 체불 증가의 원인을 경기둔화와 임금총액 증가에 따른 기저효과, 사용자의 경각심 부족, 다단계 하도급 등 구조적 유인, 처벌의 실효성 부족 등 복합적 요인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정부는 감독과 함께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올해 하반기를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집중관리 기간으로 설정하고, 기존 감독계획을 1.5만 개소에서 2.7만 개소로 대폭 확대한다.
'숨은 체불'을 선제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AI 기반 위험 예측과 재직자 익명 제보 시스템을 동원하고, 국토부·지방정부 등과 협업해 전국 단위 합동 감독도 추진한다.
집단 체불이 발생하거나, 임금체불로 노사 갈등, 건설 현장 농성 등 발생 시 즉시 현장 출동하여 청산 지도하는 이른바 '체불 스왓팀'(특공대)도 운영한다. 또 각 지방 노동관서는 경찰·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핫라인 운영해 촘촘한 체불 동향 파악 및 적기 지도・대응 등 협조 체계 구축할 예정이다.
추석 전후로는 '체불 집중청산 지도기간'을 3주에서 6주로 늘려 운영하고, 이 과정에서 고의·악의적 체불 사업주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체불 발생 사업장에는 융자 지원제도를 안내해 자발적 청산을 유도하며, 최종 6개월분 임금까지 대지급금을 확대해 피해노동자 보호에도 나선다.
아울러 정부는 다음달 2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을 '상습체불사업주 근절법'으로 명명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에도 들어갔다.
이전까지는 체불 발생 후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사건 종결 전 임금을 청산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 구조가 주요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전체 체불 사건 중 46.6%가 반의사불벌로 종결됐고, 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 미만인 사건도 77.6%에 달해 처벌 억제력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었다.
개정안은 명단 공개 사업주에 대해 반의사불벌 적용 제외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3배 이내)을 할 수 있다. 또 출국금지와 신용제재·공공입찰 제한 등 경제적 불이익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명단공개 기준을 기존 '3년 내 2회 유죄'에서 '1회 유죄'로 확대 방안도 검토 중이며, 체불 재범 시 과징금·과태료 등의 행정처분도 도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임금체불 범죄의 법정형을 기존 3년 이하 징역에서 5년 이하로 상향하고, 검찰·법원과 협의해 구형 및 양형기준 상향도 병행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처럼 강력 제재에 더해 건설·조선업 등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업종을 중심으로 임금 누수를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구체적으로는 하도급 계약 시 임금 비용을 별도로 분리해 지급하는 '임금 구분지급제'를 법제화하고, 발주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할 수 있도록 '전자대금지급 시스템'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다. 해당 시스템은 건설근로자 전자카드의 출퇴근 기록과 연동해 실제 근로에 따른 임금 지급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LH 등 국토부 산하기관의 시범사업을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다.
또 전체 체불액의 40%를 차지하는 퇴직금 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퇴직연금 제도를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아울러 청년 아르바이트생 등 사회 초년생을 위한 보호 조치도 함께 추진된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등 체불 빈도가 높은 업종을 대상으로 집중 지도하고, 체불 사건 제기 시에는 공인노무사 무료 지원을 통해 법적 구제 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고용노동부 제공정부는 체불 근절을 위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 '임금체불=임금절도'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유튜브, SNS, 산업단지 내 캠페인을 통해 노동법 준수 문화를 확산할 계획이다. 채용 플랫폼과 협업해 '노동법 위반 없는 사업장' 정보를 구직자에게 제공하고, 중소기업단체 중심으로 모범 사업장을 발굴해 포상도 실시한다.
김 장관은 "이번 대책은 일회성 처방에 그치지 않고, 범정부 TF를 통해 추진 성과를 지속 점검하고 체불 데이터 관리체계를 선진화해 나갈 것"이라며 "국민이 기초노동질서가 바로 서는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전 부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의장을 맡는 '임금체불 근절 범정부 TF'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법무부, 산업부, 국토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위 등 관계부처가 함께 추진한다. 실무협의회는 제도 개선, 합동 점검, 이행 점검 등 구체적 실행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