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와 세금환급을 위해 계산대 앞에 줄을 선 외국인 관광객들. 양지훈 인턴기자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만 있는 '입소문템(입소문을 통해 인기를 얻은 인기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CJ올리브영(이하 올영)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출국 전 온라인에서 구매 목록을 추려오고, 매장에서는 번역 앱과 사진 대조로 정보를 확인해 점원 도움 없이 신속히 결제하는 '표적 소비' 행태를 보였다.
홍대는 아시아, 명동은 전 세계 '성지'
외국인 관광객이 올리브영 홍대 타운 페이셜 마스크 진열대에서 모여 있다. 양지훈 인턴기자
'올영세일' 첫날인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올영 홍대타운 앞에는 개점 10분 전부터 외국인 40여 명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여성 고객뿐 아니라 아이 손을 잡은 노인, 젊은 남성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일본인 대학생 미야비(23)는 이날 입국하자마자 지인에게 줄 여행 선물용 마스크팩을 사기 위해 가장 먼저 올영을 찾았다. 그는 "한국 마스크팩은 저렴하면서도 만족도가 높아 선물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매장 문이 열리자 미야비는 일행과 함께 '페이스 케어' 매대로 달려갔다.
이날 오전 홍대타운 매장을 찾은 고객 대부분은 아시아권 관광객이었다. 20명 넘는 매장 직원들이 "Hello, welcome to big bang sale(안녕하세요, 빅뱅 세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를 외칠 때를 제외하면, 매장 곳곳에서 중국어, 일본어, 대만어가 들렸다.
저녁 시간대의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14년째 이 건물 경비 일을 해온 장덕철 씨는 "7층부터 20층까지는 게스트하우스로 대만, 홍콩, 중국인 여행객이 주로 머문다"며 "관광객들이 낮에는 한강을 다녀오고 저녁 무렵 올영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홍대가 아시아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라면, 명동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성지'였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중구 올영 명동타운 1층에는 300명 넘는 인파가 빼곡히 들어섰다.
특히 외국인에게 인기 높은 '페이스 케어', '스킨 케어', 그리고 '뷰티' 매대는 통행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진열대에서 제품을 꺼내려는 관광객과 재고를 채우려는 직원이 부딪히는 장면도 연출됐다.
서울 중구 올리브영 명동 타운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양지훈 인턴기자쿠웨이트에서 온 술탄 알로타이비는 "10일간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내일 귀국한다. 올영은 꼭 가보고 싶었다"며 "낙타와 염소를 기르느라 야외에 오래 머무는데, 구매한 마스크팩과 썬크림을 동생과 나눠 쓸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온 카를로스는 "한국은 아시아의 이탈리아 같다. 열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다. 이런 특징이 화장품 색상과 패션에도 드러난다"며 "아내가 산 화장품은 프랑스에 사는 딸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다.
폴란드인 얀도 "아내가 화장품, 썬크림, 아이크림에 관심이 많아 여행 8일 동안 올영 매장을 네 번이나 찾았다"며 "매장별 가격을 비교하며 꼼꼼히 고른다"고 전했다.
실제 외국인 관광객의 올영 방문은 크게 늘고 있다. 올영의 2025년 상반기 외국인 매출 비중은 26.4%로, 2023년 상반기 한 자릿수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급증했다.
번역 앱·사진 대조…외국인들, '표적소비' 경향
선크림, 마스크팩 등 제품을 한 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 쇼핑백 안에 구매한 제품이 담겨 있다. 양지훈 인턴기자외국인들의 소비 행태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포착됐다. 이들은 점원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스스로 제품 정보를 확인하며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제품 사진을 대조하거나 직접 촬영해 번역기를 돌려보며 제품 정보를 확인했다. '입소문템'을 사기 위해 주로 네이버 '파파고'의 사진 번역 기능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온 대학생 카나데(22)는 여행 전부터 구매할 제품을 미리 정리해 왔다. 그는 "여행 3일 전부터 일본 포털과 인스타그램에서 올영 인기 제품을 찾아 사진을 저장했다"며 "세일을 하는 줄 모르고 왔지만, 할인 여부와 상관없이 올영에서 원하는 제품을 살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올리브영 쇼핑백 가득 담긴 스킨케어 세트, 간식류 등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 품목. 양지훈 인턴기자올영은 외국인 고객 편의를 위해 매장 곳곳에 QR코드를 설치하고, 외국어 가능 직원을 배치했다. 이날 명동타운 매장에는 영어·중국어·대만어·일본어 배지를 단 직원들이 외국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원 도움보다 번역 앱과 사진 대조를 통해 스스로 제품을 고르는 '표적 소비'가 주를 이뤘다. 매장을 나선 관광객 다수는 네이버 지도 앱을 열어 숙소나 음식점을 검색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도와 파파고의 외국인 이용률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4월 14일부터 한 달간 해외 앱마켓에서 '네이버 지도' 다운로드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0%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3월 5일 발표한 '방한객 주요 여행 앱 동향 및 이용 현황 조사'에서도 외국인 중 네이버 지도 이용률은 56.2%, 파파고는 48.3%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