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앞두고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북중러 3국이 66년 만에 톈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 반미 연대를 과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부의 셈법이 복잡하다. 대통령실은 공식적인 평가를 자제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중국·러시아와 관계개선을 꾀하면서 북미대화에서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자처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별한 평가 없다" 조심스러운 정부…복잡해진 대북 셈법
중국 전승절에 대한 정부 반응은 신중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3일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는 늘 면밀하게, 그리고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정세가 복잡다단한 형태인 과정에서 당연히 예의주시하고 있고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평가는 없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정부의 대북 메시지 또한 조심스럽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북측을 향한 유화책에 적극적이었지만 북한의 전승절 참석이 공식화한 이후에 북측을 향한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 투톱도 잇단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조현 외교부장관은 최근 김 위원장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과 북미대화의 가능성이 낮다고 발언했다.
"우리가 너무 기대치를 높여 얘기하는 것이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위 실장, 29일 CBS라디오)"는 설명이지만, 바로 전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내용 대부분을 북한 이야기에 할애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다.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북한의 몸값을 지나치게 불리지 않으려는 동시에 과도한 국내 기대감을 낮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낄 틈 작아지는 '페이스메이커론'…비핵화 구상도 흔들리나
전승절을 통해 윤곽을 드러낸 북중러 연대는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 구상과 이른바 '페이스메이커론'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둔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한국이 낄 틈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 입장에선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 구도가 부각되는 것 또한 곤혹스럽다.
정부의 비핵화 구상도 흔들릴 위기다. 앞서 정부는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 전략을 밝혔지만,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전승절 참석은 단순히 중국의 우방으로서가 아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라는 위상을 프레임하려는 측면이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비핵화 불가와 불가역적인 핵무기 실전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연이어 열리는 외교무대…"일희일비 않고 일관된 메시지 내야"
다만 북중러 연대가 한미일과 동일한 수준의 결속력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CBS라디오에서 "시진핑 주석은 상하이협력기구에서 냉전적 사고방식과 진영 대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며 "중국이 북중러 구도를 공식화할 것이냐, 제도화할 것이냐는 조심스럽다"고 분석했다.
연이어 열리는 다자외교 무대를 활용해 일관된 대북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오는 23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한미 정상간 만남도 재차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이 유력하게 전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협력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에 방점이 있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심으로 강조한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기조를 유지하고 선제적인 조치로서 9·19 군사합의의 빠른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