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 3일 국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 공식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탈퇴 이후 26년 만의 복귀다.
오랜 기간 장외 투쟁 전략에 무게를 뒀던 민주노총이 다시 제도권 대화의 장으로 돌아오면서, 한국 사회 노사정 대화의 변화 계기가 만들어질지, 또 26년 만의 복귀가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중앙위원회를 열고 국회판 사회적 대화 참여 안건을 표결에 부쳐 찬성 다수로 의결했다. 재적 355명 중 261명이 참석해 과반을 넘는 14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중앙위원회는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 다음가는 최고 의결기구로, 가맹·산별노조, 지역본부 대표자들이 조합원 수에 비례해 참여한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은 이번 참여 배경에 대해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실 사회적 대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면서도 "이번 가결은 내란에 대한 투쟁에서 민주노총이 거리에서 시민들과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효능감을 보여줬는데 이제는 입법과 정책으로 민주노총의 효능감을 보여야 하는 때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이 합류한 국회판 사회적 대화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도해 2023년 말부터 기획된 비(非) 법정 대화체다. 기존 경사노위가 정부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노동계 비판 속에서, 국회가 중재자 역할을 맡아 사회적 의제를 논의하고 이를 입법으로 연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이번 기구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노사 5단체'가 참여한다. 상반기 실무 협의를 통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노동계 제안), △신산업 대비 근로자 교육훈련 강화(경영계 제안) 등이 의제로 도출됐다. 민주노총의 공식 참여로 이르면 이달 중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예정이다.
민주노총, 26년 전 뼈아픈 교훈…이번엔 다를까
민주노총이 3일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민주노총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 요청에 따라 노사정위원회에 합류했으나,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도입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경험한 뒤 1999년 위원회를 탈퇴했다. 이후 사회적 대화 복귀 여부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대의원대회에서는 사회적 대화 복귀 문제를 두고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경사노위 참여 안건은 번번이 부결됐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2020년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도 최종 서명을 앞두고 강경파 반발로 무산됐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 때문에 이번 복귀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의 참여는 한국 사회적 대화 체제 전체에 새로운 국면을 여는 일"이라며 "그동안 한국노총만 참여하면서 힘이 실리지 못했지만, 이제 양대노총이 모두 들어오면서 제도적 파급력이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며 정책 개입력과 협상력에서 한계를 보였다"며 "이번 참여는 정책 역량과 교섭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정흥준 교수는 "정년 연장, 노동시간 단축 같은 사안은 노동자에게 유리해도 사용자에게는 부담이 된다"며 "투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 합의를 통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큰 방향성에 합의하고, 실행은 국회와 행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소 김유선 이사장도 "기존 경사노위가 제 기능을 못한 상황에서 국회라는 새로운 채널을 통한 사회적 대화는 긍정적"이라며 "성공을 위해서는 노사정 주체들이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의제를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국회판 사회적 대화가 기존 노동 의제를 넘어 사회 전체 과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정 교수는 "저출생 대책, 돌봄 정책, 보건의료 문제도 주요 의제가 될 수 있다"며 "정년 연장과 노동시간 단축도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산업재해 근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관계법 단계적 적용, 플랫폼 노동자 권익 보호, 노란봉투법 실효화, 산업전환기 고용 안정 등 노동 분야 국정과제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언제든 대화 거부, 투쟁도 병행"…노사정 대화 다시 시험대
하지만 민주노총의 참여는 사회적 대화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시험대도 될 전망이다. 성과를 내면 경사노위와의 관계 재정립, 대통령 주재 노사정 대표자 회의 등으로 확장될 수 있지만,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다면 민주노총 내부 회의론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 전 대변인은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대화를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이번 참여도 투쟁과 대화를 병행할 것이란 의미"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김은정 협동사무처장은 "민주노총 참여 자체는 새로운 협의 틀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국회가 정작 내부 갈등도 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까지 조율할 수 있을지는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