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한일 전환금융-배출권거래제 세미나' 중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현석 교수가 발표하는 모습. 최서윤 기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재명 새 정부가 녹색금융 규모를 올해 7조 7천억 원에서 내년 8조 6천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지만, 녹색금융에 의존하기보단 전환금융과 배출권거래제(ETS)를 양 축으로 한 금융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현석 교수는 4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한·일 협력과 아시아 연대를 통한 기후행동: 전환금융과 배출권거래제(ETS) 연계'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조언했다.
현 교수는 "2024년은 전세계적으로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고 있다"며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라고 기후변화 심각성을 진단하며 운을 뗐다. 이어 "CO2(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이 지적되고, 아시아 국가들이 상위에 랭킹돼 '넷제로(Net-Zero·탄소순배출제로)' 달성을 위해 아시아가 같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소개했다.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현석 교수 발표 자료 중 캡처문제는 아시아 지역 주요국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현 교수는 "한·중·일과 아세안 국가들은 산업 구조상으로도 고배출산업, 단기내 감축이 어려운 철강과 시멘트, 석유화학 비중이 높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이 고도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아시아 주요국이 고배출산업을 키우면서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기후변화 충격에 노출되고 취약한 지역 역시 아시아 비중이 높다. 반면, 녹색전환(GX)을 위한 재정여력은 미국 등에 비해 제한적인 상황이다.
현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는 녹색금융(Green Finance)에만 주로 의존하고 추진해 왔는데, (고배출산업 의존도가 큰) 구조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면 전환금융을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환금융은 고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신(新)기후금융 기법을 의미한다. 국내에선 아직 운용된 바 없다.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현석 교수 발표 자료 중 캡처현 교수는 "전환금융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브라운 인더스트리(고배출산업)'를 미래의 녹색산업으로 연결하는 다리"라며 "경로는 다양하다. 여러 감축기술을 사용해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빨리 갈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 택소노미를 하지 않는 대신 전환금융을 활성화하고, 정부와 기업들이 전환채권을 발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고배출산업계의 배출저감을 위해서는 전환금융 외에도 탄소배출권 가격을 정상화해 저감 유인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다"며 "이 정도면 기업들이 아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15년 배출권거래제(ETS) 도입 이래 코로나19 팬데믹 전 한때 톤당 4만 원대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내려가 톤당 1만 원에도 못 미치는 7천~8천 원 수준이다. 반면 현재 저감 기술로 배출저감을 하려면 톤당 10만~20만 원 정도가 들어 배출저감보단 배출권 구매가 유리한 상황이다.
현 교수는 "전환금융이 기업 레벨의 솔루션이라면, ETS는 시장에서 탄소가격을 매기는 시그널을 줘서 시장 레벨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면서 "적절한 가격을 형성하는 게 앞으로 중요한 과제일 걸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시아 국가들이 넷제로를 달성하는 양 축은 전환금융과 ETS"라며 "현재 모든 ESG(환경·사회적책임·거버넌스) 룰을 미국이나 유럽에서 만들고 있는데, 그 룰을 따라갈 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 현실을 반영해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이 먼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현석 교수 발표 자료 중 캡처이날 세미나에는 일본의 전환금융 관련 기관 관계자도 다수 참석해 현황을 소개했다. 세미나는 전환금융과 배출권거래제 관련 양국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취지로 개최됐지만, 한국은 아직 전환금융 도입을 '준비 중'인 터라 앞서 도입해 운용 중인 일본의 사례는 산업 구조가 비슷한 국내 산업계에도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현재 일본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150조 엔 규모(정부 20조, 민간 130조)의 GX 투자 로드맵과 기후전환국채 발행을 계획을 마련해 추진 중이라고 호리모토 요시오 일본 금융청 국장은 전했다.
금융청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여름 GX추진기구 출범 뒤 적을 옮긴 다카다 히데키 일본GX추진기구 이사는 "이런 대규모 민간 투자를 일으키려면 전환금융을 동원해야 한다"면서 "일각에서는 녹색금융을 회피하려고 전환금융 얘기를 꺼냈다는 반론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2023년 일본에서 개최한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도 전환금융이 경제전반의 탈탄소 추진에 중요하다는 점을 합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