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에 위치한 사도광산의 소다유 갱도 내 전시된 에도시대 채광모습을 표현한 마네킹들. 최원철 기자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추도식에 올해도 불참을 결정했다. 작년에 이어 일본 측이 추도사에서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점이 고려됐다. 유네스코 등재 당시 약속 사항이었던 한일 공동 추도식의 2년 연속 파행은 이재명 정부의 대일외교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어 또 무성의한 日추도사…2년 연속 '파행'
정부의 불참 핵심 사유는 올해도 추도사의 내용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다는 게 적절히 표현돼야 추모의 격에 맞지만 양측 추도사 내용 중 '노동 강제성'에 대한 구체적 표현에 대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반대하지 않는 대신 조선인 노동자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물을 설치하고 추도식을 매년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에 위치한 사도광산의 도유 갱도 내부 모습. 광산 운영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광물 운반 열차도 전시돼 있다. 최원철 기자
하지만 일본이 설치한 전시물에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은 빠졌고, 지난해에 한국이 불참한 채 열린 추도식에서 일본 측은 오히려 강제동원이 합법적이었다는 취지의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름만 '추도식'이었을 뿐 실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자리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에도 추도사를 두고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우리 정부는 별도의 추도식을 사도시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유가족 분들도 대체로 이해해주셨다"며 "자제 추도식 추진 시기와 참석 인원 등의 상세 내용은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日의 일방적 약속 미이행, 유네스코에 대응하나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해 11월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추도식을 마친 뒤 광산 내 시설물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일본의 약속 미이행과 무성의로 추도식이 2년 연속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정부가 유네스코 차원에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측이 유네스코 등재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만큼 등재 취소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정부도 유네스코 차원의 문제제기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측이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했던 약속의 내용과 유네스코의 상황,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해서 향후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네스코 규정상 '보존 및 관리의 중대한 변경', 즉 물리적인 손상이 있어야만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취소가 가능해, 후속 조치 미이행으로 인한 등재 취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투 트랙 외교 시험대?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인 요구해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정부 들어 미국에 앞서 일본을 찾는 등 한일관계가 우호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과거사 마찰은 정부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다만 과거사와 협력을 분리해 대응하자는 '투 트랙' 기조 하에서 한일관계가 급격히 경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방일 계기에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확인했다"며 "이런 방향성 하에서 일본 측이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도광산 문제는 시작일 뿐 양국 정부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봉합되지 않은 과거사·영토 문제는 수두룩하다. 정부가 투 트랙 접근을 천명한 만큼, 과거사에 있어서 우리의 더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이 한국의 진보 정권에 걱정했던 부분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지만, 정부는 오히려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올해 추도식이 내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일본이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키도록 한국 정부가 더 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