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야당탄압 독재정치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계엄 이후 8·22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국민의힘을 가장 세차게 가른 물줄기는 '탄핵의 강'이다. 여당의 '더 센 특검법' 등에 맞서 단일대오를 강조하고 있지만, 당내 찬탄(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탄(탄핵 반대) 진영 간 앙금은 여전하다.
반탄파 김민수 최고위원이 찬탄파 한동훈 전 대표의 '당게(당원게시판) 논란'을 저격한 것도 불과 10여 일 전 일이다. 혁신파의 내부 비판을 '해당(害黨) 행위'로 보는 주류의 시각도 그대로다.
요원해 보였던 통합은 의외의 지점에서 이뤄졌다.
반탄파를 대표하는 5선 나경원 의원과 12·3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및 탄핵을 이끈 한 전 대표가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물과 기름'에 가까운 두 사람을 잠시나마 뭉치게 한 장본인은
세계로교회의 손현보 목사다.
손현보 목사.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손 목사는 지난 9일 경찰에 구속됐다. 6·3 대선 등을 앞두고 사전 선거운동을 펼쳤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손 목사는 올 5~6월 주일예배와 금식기도회 등에서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당선을 염원하는 지지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5월엔 유튜브에서 "이재명은 끝났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고백"이라고 하거나
주일 예배에서 "이재명은 히틀러에 못지않은 사람"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법원은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구속 사실이 알려지자, 나 의원과 한 전 대표는 일제히 메시지 발산에 나섰다. 정치적 노선 상 '물과 기름'에 가까운 이들의 주장이 상당 부분 일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연합뉴스나 의원은 "대형교회를 이끌며 공개적으로 활동해온 목사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하는 것은 억지"라며 "결국 정권에 불편한 메시지를 전했다는 이유로 목회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한 전 대표도 "이 정도 범죄혐의로 구속 수사까지 받는 것은 전례나 상식에 비춰 지나치다. 검경과 사법부가 권력의 마음을 읽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강성 당원들의 지지로 당선된 장동혁 당대표도
'종교탄압' 프레임을 들고 가세했다. 장 대표는 11일 "당당하게 맞서 수사를 받던 종교지도자를 구속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경 구절도 인용했다. 특히 조지아주 구금사태와 결부시켜 "(정부가) 전세기가 뜬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딱 하나, 손 목사 구속"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러한 국민의힘 내 발언들을 종합하면
큰 틀에서 거의 전당(全黨)적인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사실 손현보 목사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인지도 면에선 최근 특검 압수수색을 받은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에 비해 약하고, 비슷한 '강성 우파'로서의 파괴력 측면에선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씨보다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 15일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의원 등이 서울 여의대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정계 안팎에서 손 목사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계엄·탄핵 국면부터다. 그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이어진 올 초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모든 사상도 통제받을 것"이라며 보수 지지층의 위기감을 추동했다. 또 여의도 등 전국 등지에서
보수 개신교단체 '세이브코리아' 집회를 이끌며, 탄핵 기각 또는 각하 주장을 펼쳤다. 나 의원과 장 대표는 해당 집회들의 단골 연사였다.
손 목사가 기획한 반탄 집회의 클라이막스는
'일타강사' 출신 전한길씨의 연설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의회 독재'로 인해 계엄은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계몽령" 망언도 여기서 나왔다. 지난 2월 동대구역에서 전씨가 마이크를 잡은 세이브코리아 집회에는 경찰 추산으로만 2만 5천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대구·경북(T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은 앞 다퉈 집회 현장을 찾았다.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연설하는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씨. 연합뉴스결국 전한길씨가 '극우 스피커'로 체급을 키운 배후엔 손 목사가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마무리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반탄파 후보들이 전씨의 유튜브방송에 나와 지지를 호소한 점, 김문수 전 장관보다 한 발 앞서 전씨를 찾은 장 대표가 최종 승자가 된 점을 감안하면
손 목사가 당심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간과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표면상 정통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에서 안수를 받은 손 목사는 전광훈씨처럼 '이단 시비'에 휘말린 적이 없다. 전씨가 했듯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등의 막말로 뭇매를 맞거나 아예 창당(자유통일당)을 해 정교분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사실도 없다. 이는 손 목사를 위시한 세이브코리아 세력이 '대놓고 극우'인 자유통일당 세력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국민의힘과 밀착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을 거란 전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통일교와의 유착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도 반탄·찬탄파가 모두 손 목사를 '희생양'으로 호명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통 보수개신교와 자당의 유대관계를 강조하게 되면, 이재명정부가 헌법상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는 대여투쟁 명분을 강화하기 좋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단 신도들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 등을 일부 희석시키고자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사건에 연루된 권성동 의원은 통일교 관계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오는 16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