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한미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를 위해 방미길에 올랐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별 소득 없이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장관과 면담했지만 대미 투자 협력 펀드의 운용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한달 넘게 고착 상태를 이어가면서, 논의가 장기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장관 '빈 손' 귀국…한미 협상 난항 겪나
15일 산업부 등에 따르면, 김 장관은 전날 새벽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협상 성과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 장관은 뉴욕 모처에서 12일(현지시간) 러트닉 장관과 3500억달러(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협력 펀드 운용과 이익 배분 방식 등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후 양국 모두 협상과 관련해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양 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양국은 지난 7월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큰 틀에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이같은 합의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한달 반 가까이 실무 협상을 진행했음에도 좀처럼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에도 미국 워싱턴 DC에서 우리 산업부·기획재정부 합동 실무대표단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 간 실무협의를 진행했지만 빈 손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김 장관의 출국은 실무급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답답한 협상에 물꼬를 트기 위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펀드 직접투자 비율, 이익 배분 두고 입장 '평행선'
2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의 모습. 한화오션은 지난해 1억달러(약 1400억원)를 투자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한국은 직접 투자의 비중을 5% 정도로 최대한 낮추고 출자·대출·보증 등으로 이를 채우겠다는 입장이다. 또 3500억달러 펀드 기금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투자에 할애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미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의 이익금 배분을 두고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앞선 일본과의 무역 합의와 마찬가지로 투자금 회수 전까지는 수익은 절반으로 나누되, 투자 이익의 90%를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해당 금액은 미국 내 재투자용으로, 미 측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전날 귀국 과정에서 러트닉 장관이 '일본 모델' 수용을 요구했는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일본 모델이라기보다는 어차피 관세 패키지가 있는 상태"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와 함께 농산물·디지털 무역 등 비관세 장벽 해소 문제와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체포됐다가 석방된 사건과 관련한 비자 제도 개선 문제도 관건이다.
양보 없는 양국에 협상 장기화하나 "EU 투자 협상 결과 보고 참고해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장관. 연합뉴스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향후 한미 협상이 장기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러트닉 장관의 경우 11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한국은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 봤을 것이고 유연성은 더는 없다"며 "일본은 합의서에 서명했다. 한국은 합의를 받아들이든, 관세를 내든 둘 중 하나다. 흑백은 분명하다"라고 다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같은 발언은 최후통첩성 경고로 보인다. 협상이 계속 난항을 겪을 경우 15%로 낮춘 상호관세를 다시 25%로 올릴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조급하게 도장을 찍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고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며 "분명한 건 저는 어떤 이면 합의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도 지난 9일 "양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스가 프로젝트도 제대로 시작되기 어렵다"며 "저희가 어느 정도 내세울 것도 있고 하니 종합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조만간 나올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투자 협상 결과를 본 뒤, 이를 가이드라인 삼아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이 굴욕적인 협상으로 나쁜 선례를 남긴 상황에서 우리가 합의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마냥 협상을 질질 끌기도 어렵다. 러트닉 장관이 암시한 대로 미국이 협상 난항을 이유로 상호 관세를 25%까지 다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원장도 "미국 입장에서 협상이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상호관세를 다시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달 말 예정된 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유엔총회 방문 일정에서 협상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