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화성행궁 수원전통문화관. 이준석 기자"이(1), 알(2), 싼(3), 치에즈(가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첫 주말인 지난 4일 오전 11시,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앞 광장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붉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모인 중국인 관광객 40여 명이 휴대전화를 들고 '김치' 대신 '치에즈'를 외치며 기념촬영에 열중했다.
이날은 수원을 대표하는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행사장 일대는 축제 인파와 함께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화성행궁 인근 한복 대여점에는 모처럼 가게 밖까지 대기줄이 이어졌다. 한복을 차려입고 대여점을 나온 남녀 중국인 관광객들은 "진우!"('케이팝 데몬 헌터즈'의 남자 주인공 이름)를 연호하며 인근 음식점 거리로 향했다.
한복 대여점 사장 이모(60대) 씨는 "수원화성문화제 때문인지, 무비자 입국 허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중국인 손님이 많아졌다"며 "덕분에 한복 대여가 늘었고, 옷을 구매하려는 손님도 생겨 매출이 쏠쏠하다"고 말했다.
인근 한식당 사장 김모(50대) 씨도 "축제라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이번엔 중국인 단체 손님이 특히 많아 매출이 평소보다 두 배는 오른 것 같다"고 귀띔했다.
4일 오후 스타필드 수원 올리브영 매장. 이준석 기자오후가 되자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스타필드 수원으로 향했다. 스타필드 앞 도로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었고, 내린 관광객들은 경주하듯 올리브영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매장 내부는 앞서 도착한 관광객과 내국인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기 화장품과 생활용품 매대 앞에는 중국인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고, 직원들은 중국어로 응대하느라 분주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추후 파악해야 하지만 체감상 중국인 손님이 약 20% 늘었다"며 "단체 관광객이 몰리면 인기 제품이 금세 동나 재고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 관광객 무비자 허용…100만 유커 방문 기대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간편결제 수단 등 홍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정부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중국 관광객은 최소 5영업일 이상 걸리던 비자 발급 절차 없이 최대 15일간 한국을 여행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무비자 조치로 내년 상반기까지 약 100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추가로 방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중국 단체 관광객 100만 명이 더 유입될 경우 관광수입이 약 2조5600억 원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08%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번 조치가 중국의 최대 명절인 국경절(10월 1~7일)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10월 31일~11월 1일) 회의를 앞두고 시행돼, 중국인 관광객이 예상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불법 체류·기초 질서 훼손' 우려도
'민초결사대' 등 극우 성향의 단체가 서울 중구 명동 초입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혐중 시위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무비자 입국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법 체류와 기초 질서 훼손 등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법무부와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중국 톈진을 출발해 인천항에 입항한 크루즈선 '드림호'는 같은 날 오후 10시 출항했으나, 승객 2189명 중 6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이들은 비자 없이 최대 3일간 상륙을 허용하는 '관광상륙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했지만, 출항 시 승선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가 됐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단횡단, 길거리 흡연 등 기초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든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극우 단체는 서울 동대문역 등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관광객은 한 번 들어오면 수백만 원씩 소비한다. 관광객 1000만 명이 더 들어오면 엄청난 수출 효과를 내는 셈"이라며 "혐오와 증오가 아닌 환영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