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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를 응시하는 '노벨문학상' 작가…"읽기 어렵지만 시대가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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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
종말과 구원 사이의 인간을 그린 헝가리 거장
'사탄탱고'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
묵시록의 미학…한국 독자들에 '읽는 도전' 확산되나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 연합뉴스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 연합뉴스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헝가리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László Krasznahorkai, 71)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종말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가"라며, "그의 문학은 세계의 붕괴와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언어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붕괴를 응시하는 작가


1954년 헝가리 귀라에서 태어난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동유럽 체제 전환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그의 문학은 체제의 몰락과 인간 내면의 불안, 그리고 신 없는 시대의 절망을 탐구한다.

1985년 데뷔작 '사탄탱고'로 주목받은 뒤, '저항의 멜랑콜리',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발표하며 '현대 묵시록 문학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는 한 문장이 수십 줄에 달할 정도로 긴 호흡의 문체를 구사하며, 쉼 없이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인간의 절망과 구원을 동시에 탐색한다.

그의 작품은 헝가리 거장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로도 여러 차례 각색되었다. 특히 영화 '사탄탱고'(1994)는 무려 7시간 30분의 러닝타임으로 전 세계 예술영화의 신화를 썼다. 이후 영화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2000) 역시 '저항의 멜랑콜리'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사탄탱고' 포스터영화 '사탄탱고' 포스터

"읽기 어렵지만 시대가 그를 부른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동시에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사탄탱고'가 실시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 실시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가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예스24는 '사탄탱고'가 하루 만에 올해 누적 판매량의 12배를 기록했고, 전자책 판매량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알라딘은 12시간 동안 약 1800부가 판매되며 2022년 수상자 아니 에르노 당시 기록을 뛰어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국내 출간본이 모두 한 출판사(알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판매량을 보면 크라스나호르카이 작품을 독점 출간해온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박'이다.

문체가 난해하고 500~700페이지에 이르는 이른 바 '벽돌책'이지만, 출판사 알마는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서왕모의 강림',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한국에서는 생소한 크라스나호르카이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해왔다.

안지미 알마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여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언젠가 그 원작을 꼭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수상은 그때의 약속이 이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장은 쉽지 않지만, 숏폼 시대에 오히려 독자에게 '사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작가"라고 덧붙였다.

출판계는 문체가 난해하고 상업성이 높지 않은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고 출간해온 결과가 이번 수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알마는 내년 중 그의 신작 '헤르쉬트 07769'도 출간할 예정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대표작 한국어 번역본. 알마 제공 크러스너호르커이 대표작 한국어 번역본. 알마 제공 

대표작으로 읽는'절망의 미학'


'사탄탱고'는 붕괴된 헝가리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인간의 절망과 구원 욕망을 탐색한 작품이다.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중심으로, 믿음과 배신, 구원과 타락의 순환이 탱고의 리듬처럼 반복된다. 비평가들은 이를 "근대 이후 신을 잃은 인간의 마지막 춤"이라 부른다.

'저항의 멜랑콜리'는 한 마을에 나타난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광기의 서사다. 리바이어던 신화를 빗대어, 불안과 체념이 교차하는 사회의 집단 심리를 해부했다. 맨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통찰"로 평가했다.

단편집 '서왕모의 강림'은 신화와 예술, 인간의 초월 욕망을 교차시키며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일본 교토, 아크로폴리스, 루브르 등 실제 예술 현장을 무대로, '예술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한 남작의 이야기로, 귀향을 통해 삶의 순환과 소멸을 응시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내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이자, 모든 문장의 귀향"이라 불렀다.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 연합뉴스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 연합뉴스

"문학은 인간의 오래된 증언"


수상 소감에서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문학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며, 그 불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의 문학은 세계의 붕괴를 노래하지만, 동시에 언어의 존엄을 복원한다. 그의 문학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과 밀도 속에는 문명의 파괴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언어의 투쟁이 있다. 그의 문장은 절망을 다루지만, 그 끝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다.

문학이 인간의 방식으로 세계를 증언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작가에게 올해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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