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 제공그림책 작가 김영화가 제주 4·3의 기억을 담아낸 대형 병풍책 '북받친밭'을 선보인다.
책은 높이 2.7m, 길이 17m에 달하는 숲 그림을 27폭 병풍책 형태로 옮겨 엮은 작품으로, 오늘의 숲 풍경과 77년 전 그곳에 숨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북받친밭'은 제주 사려니숲길 인근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1948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대토벌을 피해 주민들이 몸을 숨겼던 곳이다. 제주공동체의 마지막 장두로 불린 이덕구가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2023년 겨울부터 2024년 초여름까지 7개월 동안 수십 차례 현장을 답사하며 숲의 현재와 과거를 그려냈다. 그는 온장 한지를 이어 붙인 작업실 벽을 가득 채우고 하루 16시간씩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세필 붓 하나로 수십만 번의 선을 그어 숲을 옮겼다. 총 130자루의 붓펜이 닳아 없어지며 거대한 숲이 완성됐다.
이야기꽃 제공 책의 앞면은 눈 덮인 겨울부터 종낭꽃 지는 초여름까지의 숲을 담아 오늘의 북받친밭을 보여준다. 뒷면은 4·3 당시 숲에 몸을 의탁했던 주민들의 피란 생활과 항쟁, 그리고 스러져간 이들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펼쳐낸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아픈 역사를 직접 해석하기보다는, 당시 피란민·무장대·토벌대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 독자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죽는 것이 더 슬펐을까? 잊히는 것이 더 슬펐을까?"라는 숲의 물음은 오늘의 독자에게 기억과 기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김영화 글·그림 | 이야기꽃 | 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