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최근 희토류 수출통제 등 대미 보복 조치를 잇따라 내놓은데 이어 미국도 중국에 대해 100%의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하는 등 미중 무역갈등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벌어진 1차 미중 무역전쟁 당시만 해도 수세적인 입장을 취했던 중국은 이번에는 희토류를 앞세워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오히려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롤러코스터'…트럼프 "모두 잘 될 것"
중국 상무부는 9일 홀뮴, 어븀, 툴륨, 유로퓸, 이터븀 등 5종의 희토류를 수출통제 목록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 4월에도 7종의 희토류를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킨 바 있다.
희토류 가공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도 강화해 중국이 보유한 희토류 채굴과 제련·분리, 야금, 자성 재료 제조, 희토류 2차 자원 회수 등의 기술을 사용할 경우 수출이 통제된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또, 다이아몬드 등 초경질 원자재와 리튬 배터리와 인조 흑연 음극재 관련 물자도 수출통제 대상에 넣는 한편, 미국 드론 업체 14곳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넣어 제재하기로 했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중국 교통운수부가 나서 오는 14일부터 미국 관련 선박에 대해 t당 400위안(약 8만원)의 '특별 항만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이 같은날부터 부과하기로한 중국 관련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보다 10% 정도 비싼 금액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보복을 예고했다. 그는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11월 1일부터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현재 그들이 내고 있는 관세에 추가로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11월 1일, 우리는 모든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통제도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주 뒤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시진핑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면서 양국간 첫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도 언급했다.
다만, 몇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바꿨다. 그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는 "우리가 그 것(정상회담)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 것과 상관없이 그 곳(경주 APEC)에 갈 것"이라며 "나는 아마 우리가 회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잠시 안 좋은 순간을 겪었을 뿐이고, 그는 중국이 불황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며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것"이라는 강조했다.
첫 정상회담 앞두고 '주거니 받거니'…협상 주도권 잡기용
연합뉴스4차례의 무역협상을 통해 양국은 서로 상대방에 부과한 고율 관세 인하와 무역전쟁 휴전, 중국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권 매각 등 큼직큼직한 합의를 이뤄내는 등 성과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 양국이 다시 보복 조치를 주고받으며 갈등을 빚은 것은 경주 APEC 회의를 전후로 열릴 예정인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양국간 무역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4월에 이어 희토류 수출통제라는 비장의 카드를 다시 꺼내면서 파장이 커졌지만 먼저 싸움을 건 것은 미국이다.
4차 무역협상을 통해 틱톡 매각 약속을 얻어낸 뒤인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수출통제 명단에 있는 기업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자동으로 수출통제를 적용받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 경우 중국 빅테크 기업 화웨이 등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 기업은 더 이상 자회사, 혹은 제3국 기업 인수 등을 통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미국의 수출통제 품목과 기술 등을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
화웨이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첨단 AI 반도체 개발 등 중국의 기술독립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뼈아픈 조치다. 싱가포르 소재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스티븐 올슨 객원 선임 연구원은 "(해당 중국 기업에)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달 12일에는 미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통제 조치를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GMC 반도체와 지춘 반도체 등 중국 기업 23곳을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중국은 '악랄한 조치'라며 보복을 예고했고, 8일간의 국경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희토류 수출통제를 필두로 다양한 보복 조치를 풀어놨다.
'비장의 카드' 희토류로 트럼프 양보 얻어낸 시진핑
연합뉴스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부터 이듬해까지 18개월간 지속된 미중 1차 무역전쟁은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대량구매 하는 등 2500억달러 어치의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기로 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중국이 무차별 관세폭탄 등 미국의 공세에 떠밀려 어쩔수 없이 합의안에 서명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난 뒤 현재 진행형인 2차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1차 당시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내놓은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무역전쟁이 시작되자 지난 4월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보복 카드로 내밀었다. 이후 미국의 항공.우주, 자동차, 방산 등 산업계가 희토류 부족으로 비상에 걸렸다.
그 결과 불과 1개월여 만에 양국은 무역협상을 벌여 서로 115%P씩 관세율을 인하하고, 무역전쟁 역시 9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4차까지 진행된 무역협상에서 주요 의제에 희토류는 늘 포함됐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희토류 생산에 나서 기술과 시장, 그리고 전문인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9일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발끈하며 "그들이 몇 년 전부터 계획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전 세계를 인질로 잡는 것"이라고 중국을 강력 비난한 배경이다.
동시에 중국의 대미국 수출 비중이 2018년 19.3%에서 지난해 14.7%로 크게 낮아지는 등 중국이 수출 시장 다변화에 나서며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데 주력해 온 점도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중국 해관총서가 13일 발표한 9월 수출액(달러 기준)은 전년 동월 대비 8.3%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미국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27% 감소했음에도,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타지역 수출이 급증한 결과다.
트럼프 갈길 바쁜데…'시간은 우리편' 시진핑은 느긋
연합뉴스희토류 공급망 장악과 낮아진 대미 수출의존 등 중국의 협상카드가 1차 무역전쟁 때보다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국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시간'이다.
중국은 공산당 1당 지배체제와 시 주석의 장기 집권체제 구축으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시간에 쫓겨 합의를 도출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는 4년으로 정해진데다 내년 중간선거까지 고려하면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로 인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주가하락 등의 피해를 단기간에 수습해야할 필요성이 크다.
당장 연말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연휴 등 미국의 대표적 소비 시즌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세전쟁이 재점화될 경우 소비부진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재를 동시에 맞닥뜨릴 수 있다.
중국 싱크탱크 중국금융40인논단(CF40)은 미국 내에서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문제 등은 단기간에 완화하기 어려운 반면, 중국은 미국이 관세율을 더 올려도 정책적 지원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다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던 미국 주요 지수가 폭락하는 등 불과 몇 시간만에 미국 증시에서 2조 달러(약 2870조 원)가 증발하며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다만, 중국도 이미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와 내수 부진 등으로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며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위협에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싸움을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일단은 갈등을 수습하는게 우선이라는데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