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12·3 비상계엄 선포 후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관료들에게 했던 지시들이 국군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 속 이행 지침들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장관은 '포고령 1호'를 미리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란특검은 박 전 장관이 이미 해당 내용을 인지하고 계엄 매뉴얼을 실행함으로써 장기간 계엄이 지속될 상황에 대비하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내란특검은 지난 9일 박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2023년 합동참모본부가 펴낸 계엄실무편람을 증거로 함께 제출했다. 이 편람은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의 실무를 규정한 구체적인 매뉴얼이다. 계엄 선포 후 박 전 장관은 교정본부에 구치소 수용 현황 파악을 지시했는데, 이것이 '통상적 업무 지시'가 아닌 계엄의 실행과 유지를 위한 차원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계엄실무편람의 '행형업무 처리 지침'에 따르면 계엄 시행시 내란·외환죄 사범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죄, 군형법상 반란 및 이적죄, 기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범죄자는 격리 수용과 우선 처리 대상이다. 계엄 상황에서 수용자가 늘어 수용시설과 방호능력을 초과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한 '비상시 석방' 지침도 있다. 위의 내란·외환죄 사범 등이나 강도상해·강도강간 등 각종 흉악범을 제외한 나머지 피구금자·피감호자에 대해 이른바 '조절 석방'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서 수차례 강조한 "반국가세력 척결"을 실현하기 위한 임무가 법무부에 주어졌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미 담화문에서 '내란 획책 반국가 행위자'로 규정한 당시 야권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박안수 계엄사령관 명의로 '포고령 1호'에 지정한 파업 의료인과 각종 집회·시위 참여자들을 격리 수용·우선 처리 하기 위해 구치소 현황을 파악하고 수용 여력에 따라 조절석방을 검토하는 일 등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가담한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박종민 기자
박 전 장관은 계엄 상황에서 교정본부의 역할과 현황을 파악하려는 차원의 연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의 연락 후 교정본부에서는 구치소별 수용현황과 수도권 구치소 추가 수용 여력 등을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박 전 장관이 출입국본부에 한 지시도 위법한 계엄을 이행하기 위한 '더 위법한 조치'로 보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배상업 전 출입국본부장에게 전화해 계엄 선포 후 공항 등에 사람이 몰려 혼잡해질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원론적 지시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연락 후 입국·출국금지와 출입국 관련 대테러 업무를 맡는 출입국규제팀이 법무부 청사로 출근해 대기했다. 계엄실무편람의 '출입국 통제' 관련 지침은 병역 의무자나 동원자원의 유출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출국 통제를 명시하고 있다. 12·3 밤은 전시·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그러한 출입국 규제가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관련 부서가 움직인 셈이다. 포고령 위반자 등에 대한 출국금지는 계엄실무편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문이나 포고령 내용 자체를 미리 보지 못했고, 위법성 인식이 없는 상태로 비상계엄 선포 후 원론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검은 박 전 장관이 12·3 당일 저녁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한 후 순차로 들어온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포고령 1호' 내용을 인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 총리는 특검 조사 과정에서 포고령을 미리 받은 점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이 교정본부와 출입국본부에 연락한 시점도 포고령이 언론에 공표된 밤 11시30분쯤 보다 20~30분 앞선다.
내란특검 박지영 특검보는 전날 브리핑에서 "(박 전 장관의 혐의 사실 일부는) 단순히 검토 (차원의) 지시를 지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계엄이 장시간 이어지는 것에 대한 준비로 보이는 지시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오는 23일 박 전 장관을 재소환해 위법성 인식 관련 정황을 보강하고 조만간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