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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의 전남, 순천·광양·여수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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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인구 절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속에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밖 대부분의 지역이 지방균형발전을 외치지만 고령인구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전남은 지역소멸 위기에 놓였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산업 중심지로 지역경제를 이끌던 전남 동부권도 청년층 유출과 경기 침체로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전남CBS는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도 역사와 문화, 산업의 특색을 살려 다시 살아나는 지역으로 거듭난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통해 전남 동부권의 지속 가능한 해법과 전략을 모색한다.

[지역은 소멸하지 않는다⑨]
순천·광양·여수, 소멸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순천, 생태에서 콘텐츠로…도시 균형 '과제'
광양, 철강에서 문화로…'대학·산업·행정' 삼각축 구축해야
여수, 관광도시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절실

전남 동부권에 위치한 순천·광양·여수 위치. 전남도 제공 전남 동부권에 위치한 순천·광양·여수 위치. 전남도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인구감소 벼랑 끝 '선택과 집중'이 불러온 日 도야마의 변화
② 철강에서 문화도시로…9월이면 '린츠'가 들썩인다
③ '창조적 과소' 가마야마의 역설이 말하는 소도시의 생존법
④ 청년이 돌아온다… 라이프치히 30년의 '반전'
⑤ 변방 산골서 스마트워크로 변모…핵심은 '숫자' 아닌 '순환'
⑥ 기업이 오고, 청년이 머문다…유럽의 '실리콘 작소니' 드레스덴
⑦ 살아남는 도시의 조건…日 소도시 지역 정체성에 사활 걸다
⑧ 당신의 도시에는 '시스템'이 있습니까?
⑨ 인구 절벽의 전남, 순천·광양·여수의 생존법
(계속)
 
전남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인구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권역 중 하나다. 22개 시·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그 안에서도 순천·광양·여수로 이어지는 동부권은 상대적으로 '버티고 있는' 축에 속한다. 순천은 전남에서 6년 연속 신생아 수 1위, 광양은 3년째 인구 순유입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안도의 신호가 아니라, 마지막 경보음에 가깝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10~15년 뒤 지금의 인구 구조가 한 번 무너질 수 있다"며 "지금이 체제 전환과 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기를 놓치면 현 체제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붕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이 최근 여수에서 전남CBS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방 인구 구조 변화와 동부권 대응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이 최근 여수에서 전남CBS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방 인구 구조 변화와 동부권 대응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

"소멸 위험에서 자유로운 도시는 없다"

순천(27만5천 명), 광양(15만5천 명), 여수(26만4천 명)는 통계상 '소멸 위험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지역 역시 인구 감소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도 매년 500명씩 자연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며 "소멸위험 지역에서 빠져 있지만 자유롭지 않다. 굉장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광양은 인구가 늘고 있지만 웃을 수만은 없다"며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 기피가 계속되면 이 추세를 멈추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을 '저출산'보다 '청년 유출'에 둔다. 이상림 연구원은 "지방소멸 대응기금은 구조적 문제를 복지로 덮은 임시방편이었다"며 "출산율 문제가 아니라 청년이 빠져나가는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돈도, 사람도 사라진다"고 꼬집었다.

노관규 순천시장이 순천의 인구 정책과 청년 정주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노관규 순천시장이 순천의 인구 정책과 청년 정주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

순천, 생태에서 콘텐츠로…창업·도시 균형 '과제'

'생태도시'로 불리는 순천은 이제 생태를 넘어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핵심은 콘텐츠 산업, 원도심 재생, 그리고 청년이 머무는 체류형 도시 구조다.

순천시는 애니메이션·웹툰·영상 기업을 직접 불러들이고 있다. 현재 로커스(애니메이션), 케나즈(웹툰), 오노코리아 등 콘텐츠 기업이 순천에 입주했고, 관련 협력사 30여 곳이 구도심에 제작 거점을 마련 중이다. 순천은 또한 우주항공·바이오 투자로 800~1천개의 청년 일자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노관규 시장은 "문화콘텐츠나 우주항공, 방산, AI 기반 바이오 같은 산업은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분야"라며 "그 기업을 불러와야 청년이 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시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업을 데려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기업이 자라는 구조', 즉 지역 안의 창업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국내 청년 창업 지원은 아직 '초기 보조금' 중심이다. 하지만 보조금은 계약이 끝나면 끊기고, 관계도 함께 끊긴다. 순천이 진짜 콘텐츠 도시로 자리 잡으려면, 애니메이션과 웹툰 분야의 스타트업이 지역 안에서 성장하고 정착할 수 있는 장기적 생태계가 필요하다.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 F'는 그 대안 모델이다. 세계 최대 창업 허브인 이곳에는 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으며, 대기업·투자사·전문가 네트워크가 상시 연결돼 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성장 단계별 프로그램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라호진 슬로크 대표는 "한국의 보조금 시스템에 프랑스식 프로그램을 결합하면, 지방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석 교수도 "창업 지원을 1~3년 하고 끝내면 뿌리를 못 내린다"며 "4~6년 차에는 다른 형태의 지원을 붙여 생태계처럼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순천시는 지난 9월 원도심 애니메이션·웹툰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을 위한 환영 행사를 열었다. 순천시 제공 순천시는 지난 9월 원도심 애니메이션·웹툰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을 위한 환영 행사를 열었다. 순천시 제공 
순천이 지금 유치 중인 콘텐츠 기업들이 스타트업과 협력해 공동 제작·멘토링·투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지역 내에서 새로운 창업 기업이 자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유명 기업이 들어오고, 그 곁에서 청년이 배우고, 다시 창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결국 스타트업이 자라고, 청년이 머물며, 원도심이 다시 채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순천은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로 진화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팽창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신도심 확장으로 원도심 공동화가 심해진 것이다. 순천시는 이에 빈 상가와 건물을 콘텐츠 스튜디오로 전환해 일자리와 생활을 함께 채우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제는 크게 짓는 시대가 아니다"며 "기존 도시의 빈 공간을 다시 쓰고, 작게 고치고 채우는 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콤팩트시티는 확장을 멈추는 결단에서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정인화 광양시장이 청년 인구 증가 정책과 지역 정주 여건 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정인화 광양시장이 청년 인구 증가 정책과 지역 정주 여건 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

광양, 산업+문화 공존 도시로…일자리 시스템 구축해야   

광양이 '철강 도시' 위에 '미디어아트 도시'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산업에 문화를 결합해 도시의 정체성을 새로 짜는 것이다.

정인화 시장은 "광양의 산업에 문화의 옷을 입히려 한다"며 "산업과 정주, 문화가 함께 돌아가야 도시가 지속된다"고 말했다.

광양시는 국제미디어아트페스티벌, 도립미술관 문화벨트, 배알도 미디어파사드 등 도시 전역을 미디어아트 콘텐츠로 재구성하고 있다. 단순한 전시나 축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창작 무대로 설계하는 작업이다. 산업시설과 예술이 공존하고, 공장의 불빛이 콘텐츠로 바뀌는 '산업+예술 융합 도시' 모델이다.

이 같은 전략의 롤모델은 오스트리아 린츠다. 철강 산업 중심지였던 린츠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통해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허브로 성장했다. 광양시는 린츠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해 '린츠 아르스일렉트로니카 센터' 설치도 추진 중이다. 센터가 들어서면 린츠에 이어 '아시아의 미디어아트 수도'로 도약할 가능성도 열릴 전망이다.

지난 22일 개막식에 참석한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크리스틀 바우어 총감독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전남CBS 지난 22일 개막식에 참석한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크리스틀 바우어 총감독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전남CBS 
하지만 전문가들은 "속도보다 내실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공간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의 공감대와 문화적 토양을 함께 쌓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린츠는 지난 30년 동안 시민을 대상으로 기술과 예술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러한 교육과 문화 경험의 축적이 오늘날 린츠가 산업도시이자 예술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광양도 청년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교육 프로그램, 미디어아트 시민학교 등 '시민 참여형 문화 생태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야 '축제의 도시'가 아닌 '생활 속 예술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광양은 산업 기반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등과 협력해 2차전지 산업 중심의 맞춤형 인력 양성 모델을 구축했으며, 매년 약 1,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일자리 정책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대학·기업·행정이 긴밀히 협력해 인턴십에서 취업까지 연계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원은 "대학은 인재를, 산업은 일자리를, 행정은 정주 여건을 책임지는 '대학·산업·행정 삼각축'이 맞물려야 한다"며 "그 구조가 완성될 때 비로소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에 개최된 '2035 여수시 관광종합발전계획 수립 용역' 최종보고회. 여수시 제공 지난 9월에 개최된 '2035 여수시 관광종합발전계획 수립 용역' 최종보고회. 여수시 제공 

여수, 관광도시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절실

순천, 광양과 달리 섬과 바다라는 자연경관에 특화된 여수는 1998년 3여 통합 당시 인구가 33만 명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약 26만 4천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전남 전체에서도 청년층(20~34세)의 순유출이 큰 곳으로 손꼽힌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교육시설과 일자리,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청년층 3만 7868명이 빠진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생산가능 인구(15~64세) 유출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인구위기가 심화되는 실정이다.
 
이에 여수시는 '인구정책 5개년(2024~2028) 기본계획'을 수립해 약 12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주거·경제·교육·생활 안정화 등 4대 축을 중심으로 인구 유출방지 및 청년 유입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여수시는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잠재 정주계층 확대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박람회 이후 사후활용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박람회장·섬 탐방로·해양레저시설 등이 정주형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박람회 사후활용과 풍부한 해양·섬 환경이라는 지역 특성을 연계한 인구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연경관을 단순한 관광자산이 아니라 청년층를 비롯한 생산가능 인구의 정주 유인수단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수세계박람회장. 여수시 제공  여수세계박람회장. 여수시 제공 
자연적인 지역 특성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워케이션을 활성화한 일본 효고현의 섬, 아와지시마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아와지시마 역시 농업과 수산업 등 1차 산업이 발전한 곳으로, 이곳의 워케이션 네트워크는 기존 1차 산업 생산물을 가공하거나 새로운 관광서비스를 찾아보는 연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여수 역시 체류형 관광지로서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는 만큼 해양과 워케이션을 연계한 섬 투어, 해변 근무 공간과 같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연구원 김대성 사회정책연구실장은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제주는 사실 생산도시도 아니고 인프라가 풍부한 것도 아니지만 외부와의 단절, 자유로움 등 섬으로서 정체성을 강점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여수 역시 섬이라는 자원의 관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실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통해 조그마한 수산도시에서 지금은 관광도시가 됐지만 이후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연경관 등의 강점을 콘텐츠로 잇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워케이션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매개체를 발굴해 지속성 있는 콘텐츠로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열린 여수·순천·광양 행정협의회. 여수시 제공 지난 3월 열린 여수·순천·광양 행정협의회. 여수시 제공 

'기능적 연대'…동부권 생존 전략 될까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각 도시가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인구와 산업, 재정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이제는 어느 도시도 혼자서 성장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행정 통합이 아니라 기능적 연대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로의 강점을 연결해 약점을 메우는 협력 구조가 지역의 지속성을 좌우하게 된다.

순천은 생태와 콘텐츠로, 광양은 산업과 문화로, 여수는 해양과 관광으로 중심축을 세우고 있다. 세 도시가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도 권역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도시처럼 작동할 때, 비로소 '동부권의 공동 생존 전략'이 완성된다.

광역화와 연대는 이제 단체장들 역시 피할 수 없는 미래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원은 "모든 도시를 평평하게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며 "순천·광양·여수는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에 기반한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시의 기능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느냐다.  도시의 경쟁력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그 구조가 끊김 없이 작동하고, 리더가 바뀌어도 이어질 수 있을 때, 그 도시만이 인구 감소의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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