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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속 다시 일어서는 불사조" 문병근 경기도의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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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2022년 6월 1일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선출된 156명의 경기도의원들은 4년간 사람중심 민생중심의 가치를 둔 '의회다운 의회'를 만들기 위해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1390만 경기도민의 대표기관인 경기도의회는 도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경기도의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뿐 아니라 지역의 현안과 민원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도민들을 대표하는 경기도의원의 생각과 가치관, 비전 등은 지방자치시대 경기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경기도의회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인터뷰
11대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25가지 직업 경험, '잉꼬전자'와 함께한 청년 시절
민주당 3선 수원시의원, 국민의힘 경기도의원으로 거듭나다
약속은 100% 실천, 청소년 위한 '권선구 청소년 수련관' 건립
"정치는 미리세대를 위해…고비마다 일으켜 세운 건 주민들"


"구두닦이, 도둑질 빼고 안 해본 게 없습니다"
 
문병근 경기도의원(국민의힘·수원11)은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인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을 딛고 3선 수원시의원을 지낸 그는 정치적 고비와 당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주민의 신뢰를 발판을 경기도의원으로 우뚝 섰다.
 

25가지 직업 경험, '잉꼬전자'와 함께한 청년 시절

1959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문 의원은 중학생 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상경해 4남 2녀의 둘째로서 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간 그는 일찌감치 '눈물 젖은 빵' 맛을 알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온밥솥을 만든 회사'로 기억하는 잉꼬전자에서도 일했던 경험을 회고했다.
 
20대에는 건축 기능 자격증을 따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로자로 파견돼 품질관리 업무를 맡았으며, 1990년대 초에는 1급 자동차 정비업체를 차렸다. 문 의원은 스스로 "구두닦이하고 도둑질말고 안 해본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약 25가지의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3선 수원시의원, 국민의힘 경기도의원으로 거듭나다

수원에서 20년간 통장협의회 등 12개 봉사단체에서 총무 역할을 맡으며 지역사회에 봉사했던 문 의원은 주변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첫 수원시의원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했지만, 오히려 "바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깨달음과 낙선 직후 불거진 흑색선전, 회사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나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시 출마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재도전해 처음 선출직 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 소속으로 3선 수원시의원을 지내며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수원시의회 의장 선거 출마 당시 현직 국회의원과의 오해로 인한 갈등과 검찰 고발 사건을 겪으면서 정계 은퇴를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검찰 고발은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오해를 씻었지만 이미 마음에는 큰 상처가 남았다. 그때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의 입당 제안을 받았다. 민주당 출신 3선 시의원이었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과 진정성을 인정받아 국민의힘 소속 경기도의원 출마로 이어졌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

약속은 100% 실천, 청소년 위한 '권선구 청소년 수련관' 건립

문 의원은 정치를 시작하며 "민원이든 공약이든 약속했으면 100% 실천해야 한다"는 목표를 삼았다. 그는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늘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 반드시 답을 해줬다고 강조했다.
 
첫 당선 후 문 의원이 4년 만에 이뤄낸 핵심 공약은 권선구 청소년 수련관 건립이었다. 어린 시절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주경야독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방황했던 개인적 경험이, 미래 세대가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학사(복지행정학), 석사(경영학)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문 의원은 "배움은 끝이 없다"의정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정치는 미리세대를 위해…고비마다 일으켜 세운 건 주민들"

문 의원은 현재 인구가 가장 많고 면적도 가장 넓은 수원 권선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노인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지만 그는 노인 정책만큼이나 청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는 미래세대를 바라보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원의 정치 원동력은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했을 때 보여주는 행복한 모습"이다. 그는 "고비마다 날 일으켜 세운 건 주민들이었다"며 스스로를 "고비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불사조 정치인"으로 표현했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
다음은 문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정치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중학생 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4남2녀의 둘째였는데 큰 형님도 일찍 돌아가셨다. 일찍이 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 상경해 공장 여러곳을 돌며 일을 했다. 잉꼬전자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보온밥솥을 만든 회사로 기억한다. 20대 때는 건축 기능 자격증을 딴 것을 계기로 사우디아라비아 근로자 파견돼 품질관리 업무를 맡았다. 사무직도 해봤다. 많은 경험 끝에 30대에 1급 자동차 정비업체를 차렸다. 돌이켜보면 25가지 정도의 직업을 경험했다. 구두닦이하고 도둑질말고 안 해본게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비업체를 차릴 때가 1990년대 초였는데 지금처럼 SNS가 발달된 때가 아니었다. 홍보를 하면 전화번호부를 의존하거나 구전을 통해 알리는 방식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맥이 넓어졌고 봉사단체와 관변단체에 나가 활동을 많이 했다. 통장협의회같은 단체 12개 곳에서 활동했는데 그러면서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20년 정도 했다.
 
그때 총무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주변에서 정계 입문을 권유했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성공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데다 매사 적극적이어서 잘 어울릴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렇게 자의반타의반으로 2002년 수원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낙선했다. 이후 절치부심해 2006년 처음 선출직이 됐다.
 
Q. 보통 첫 선거를 낙선하면 '이 길이 맞는가'라는 고민이 든다고 하는데 어땠나
 
첫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후회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첫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면서 내 생각보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날 지지한다는 깨달았다. 나름 그동안 바르게 사랑왔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낙선 직후에도 당선인에게 선거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정보와 현안들을 알려줬다.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엉뚱하게 나에 대한 흑색선전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에도 직간접적인 공격이 있었다. 이대로 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출마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
Q. 첫 당선증을 받은 뒤 하고 싶었던 정책은 무엇이었나
 
당시 핵심공약이 권선구 청소년 수련관 건립이었다. 4년 만에 만들었다. 애초에는 청소년문화센터를 건립하는 게 목표였는데 정부 예산을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상황에 맞춰 청소년 수련관으로 명칭을 바꿔 추진했다. 
 
어려서부터 학교 관련 시설에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 어렵게 살던 나를 보는 거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청소년 시절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빠르게 발을 담갔다. 상경하면서 주경야독의 목표가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않았다. 오랫동안 방황도 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를 통해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도 뒤늦게 거쳤다. 학사는 2019학번, 석사는 2021학번이다. 그런 나의 개인적 경험과 미래 세대가 마음껏 청소년 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Q. 대학에서는 어떤 걸 공부했는가
 
학사는 복지행정학, 석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Q. 의정활동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한다는 의미인가
 
맞다. 배움은 끝이 없다. 사물이나 우리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깊이도 달라진다는 걸 느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나. 
 
Q. 정치를 시작하면서 삼은 목표가 있었나
 
내 선거와 타인의 선거를 포함해 지금껏 6번의 선거를 치렀다. 다른 후보 캠프의 사무장도 해봤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정치인들을 보면 당선 뒤에 공약이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더라. 어쨌든 정치를 시작했으면 생활정치 안에서라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민원이든 공약이든 약속했으면 100% 실천해야 한다. 정치활동의 대부분은 민원이다.
 
민원은 특정 장소에서 민원인과 단 둘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행사장이나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에서는 해결해줄 것처럼 약속해놓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정치인들을 많이 봤다. 난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늘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메모장에 기록된 내용은 반드시 답을 해줬다. 
 
Q. 경기도의원 도전 계기가 궁금하다
 
3선 수원시의원을 지냈다. 3선 당시 수원시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당시 당협위원장이자 현직 국회의원이 의장 선거에 개입하더라. 그는 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유는 오해였다. 당시 국회의원 운전기사가 작은 실수를 했는데 보좌관이 내가 한 것처럼 보고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실수에 대해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검찰조사를 받고 결과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탈당했는데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입당을 제안했다. 사실 탈당하면서 정계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마침 국민의힘 당내 당내 경기도의원 출마 후보군이 많지 않았다. 민주당 출신 3선 수원시의원이었지만 나의 정치적 활동과 진정성에 대해 인정해줬다. 입당하면서 경기도의원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당협위원장도 승낙했다.
 
Q. 파란만장한 정치 행보를 보였는데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이 있는가
 
나를 모르는 주민이었는데, 심지어 내 지역구 주민도 아니었는데 그의 민원을 해결한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수원시 세류동 주민인데 가설건축물 위반 신고로 과태료를 내는 상황인데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구에도 국회의원과 도의원, 시의원이 있을텐데 주변에 물어보니 나를 추천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가서 확인했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리모델링한 곳이었는데 용적률 문제였다. 가설건축물이 용적률을 넘어선 건축법 위반이었다. 건축법은 지방의회 조례가 아닌 법에 따라야 하는 문제였다. 용적률 위반 소지가 있었지만 다행히 대지 면적이 예상보다 넓은 곳이었다. 이를 잘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 민원인은 해외에서 오래 살다 수원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보통 해결방법을 알려줄 때 기존 건물을 뜯어내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알려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사람은 달랐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적법한 절차를 알려주고 무사히 영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해결된 뒤 매달 고맙다며 찾아왔다. 민원 해결 뒤에 이렇게 까지 감사 표현을 한 민원인은 처음이었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문병근 의원(국민의힘·수원11). 박철웅 PD
Q. 정치인 문병근이 활동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했을 때 보여주는 행복한 모습인 것 같다. 그들이 기뻐할 때 정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커진다. 어려움도 많지만 정치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정치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사회서비스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지역구인 권선구의 특징은 무엇인가
 
수원시 내 4개 구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고 면적도 제일 넓다. 인구는 38만 명가량이다. 연령대로는 노인인구가 많은 편이다.
 
Q. 지금까지 얘기한 공약은 노인보다는 청소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유가 있는가
 
맞다. MZ세대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공약을 냈고, 초중고 학생들에게 복지카드를 전면 지급하라고 하기도 했다. 이밖에 초·중학교 설립, 어린이병원 건립 등을 주도했다.
 
노인정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청년에 대한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잘돼야 노인도 함께 잘 살 수 있다. 정치는 미래세대를 바라보고 해야 한다. 
 
Q.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뭐든 열심히 일했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현실적으로 도의원이든 시의원이든 우리 동네에 나무 한 그루 안 심고도 선출직을 하는 이들이 있더라. 그런 정치인을 보면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면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말을 듣고 싶다.
 
Q. '문병근은 000이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문병근은 불사조다. 수원시의원 선거, 경기도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여러 차례 시련이 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지지로 여기까지 버텨냈다. 고비마다 날 일으켜 세운 건 주민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신뢰에 호응하는 정치인, 고비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불사조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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