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관 부장판사(왼쪽)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진공동취재단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기소 당시 세웠던 전략이 부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검이 애초 '내란 우두머리 방조'라는 이례적 혐의를 적용한 배경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의 수사 기록을 법원이 들여다보게 해 한 전 총리 재판의 법리 검토 폭을 넓히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다.
한 전 총리 사건의 판결이 먼저 내려질 경우, 결국 같은 내란 사건인 윤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재판의 판단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방조냐 중요임무 종사냐'…특검의 노림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내란특검은 지난 8월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범행에 대한 사실관계를 일부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당시 특검 내부에선 기소 직전까지 그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적용할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할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가 오갔다.
논의 끝에 특검은 한 전 총리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범행을 도운 방조범으로 기소했다. 한 전 총리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 사건의 수사 기록을 직접 들여다보게 하려는 특검의 전략적 판단이 담겼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다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만으로 공소를 유지했다면,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가 신속히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범인 윤 전 대통령의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재판부가 방조 여부 판단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 공소장 변경 요청…특검의 '신속 수용'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 이진관 부장판사가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진관 부장판사는 지난달 20일 특검에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선택적 병합해달라는 취지의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의 취지를 "내란 우두머리 방조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판단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더해 재판부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추가를 요청한 배경에는, 통상적이지 않은 혐의 구성을 법리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법은 내란죄를 '우두머리', '중요임무 종사', '부화수행'으로 나눠 각자의 역할에 따라 구성요건을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특검은 형법상 일반 개념인 '방조범'을 적용해 한 전 총리를 '내란 우두머리 방조'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는 형량이 더 무겁고 특검의 입증 부담도 커 재판부로서는 신중한 판단이 불가피하다. 반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는 구성요건이 보다 명확하고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빠른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재판부는 법리 검토와 신속한 판단 두 측면을 고려해 공소장 변경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방조 혐의만으로는 시간과 입증 부담이 크다는 한계를 보완하면서, 한 전 총리 사건을 먼저 마무리해 윤 전 대통령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특검이 재판부 제안을 수용한 것이 단순한 절차적 대응을 넘어, 재판의 속도와 향후 파급효과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달라도…'한덕수 판결'이 기준점 될까
한 전 총리 사건의 결론은 향후 내란 사건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재판은 각각 독립된 재판부에서 심리 중이지만, 핵심 법리와 사실관계가 맞닿아 있어 결론이 크게 엇갈리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면 재판부 간에도 판단 방향을 공유하며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결론이 엇갈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은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최근 재판 지연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한 전 총리 사건의 판결이 그 흐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해당 재판부는 지난 4월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의 절차적 이의 제기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판장이 오히려 피고인 측 일정에 끌려 다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국 한 전 총리 사건의 선제적 판결이 지연되고 있는 윤 전 대통령 재판부를 압박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전 총리 사건에서 유죄 판단이 내려질 경우, 윤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기엔 부담이 있어 특검으로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