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최근 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과천=류영주 기자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대장동 항소 포기'와 관련, 수천억원대의 범죄수익 환수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에 '민사소송'을 들어 반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1심 법원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고 봤다.
이번 사태는 검란(檢亂)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일선 검사장과 지청장들은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공개 입장문을 냈고, 사퇴 요구도 들끓고 있다.
정성호 "민사 소송 제기하면 돼"…1심 법원 "민사 피해 회복 곤란"
정 장관은 10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가진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에서 "범죄수익환수규제법이나 부패재산몰수법에 의하면 몰수나 추징은 피해자가 없는 경우에 국가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있고 2천억 정도는 이미 몰수보전 돼 있다"며 "피해자라고 규정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에 대해 민사 소송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의 설명은 대장동 항소 포기로 수천억원대의 범죄수익 환수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앞서 검찰은 1심에서 피고인들이 총 7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지만, 1심은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등으로 뇌물액 473억3200만원만 추징했다. 향후 2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추징할 수 있는 범죄수익 상한은 473억원으로 막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다.
정 장관의 언급은 범죄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명확한 사건에서는 검찰이 피해자 대신 범죄수익을 추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정 장관의 인식과 차이가 있었다. 1심은 대장동 사건으로 인한 범죄 피해가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범죄 피해 재산으로서 몰수·추징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부패재산몰수법은 '범죄피해자가 그 재산에 관해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 청구권 또는 손해배상 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 회복이 심히 곤란한 경우'를 몰수·추징의 요건으로 들고 있다. 피해자가 금전적 피해 회복이 어려운 사안이면 몰수·추징을 통해 피해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1심은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소송의 기일이 1심 변론기일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업무상 배임과 관련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절차 진행이 중단된 상태인 점 등을 들어 "공사가 대장동 관련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에 민사소송 절차를 통하여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범죄피해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결국 민사소송을 통해 추후 환수가 이뤄지더라도 그 시점이 매우 늦어지거나, 피해 회복이 몰수·추징만큼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검란'으로 번진 대장동 항소 포기…빗발치는 노만석 사퇴 요구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한 검찰 내부 반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노 대행과 연수원 동기인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박영빈 인천지검장·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은 10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게시했다.
이들은 "일선 검찰청의 공소유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검사장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의 1심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검사장들이 대검 수뇌부를 향해 집단 성명을 낸 건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통해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2개 부치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성명을 내고 "검찰 구성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중요 사건에 대한 항소 포기 이유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검에서 근무하는 평검사들인 검찰연구관들은 노 대행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노 대행은 이날 대검찰청 청사 출근길에 '법무부 장·차관으로부터 항소 포기하란 지시 받았느냐'란 취재진 질문에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