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 모습.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올해 2월 제주에서도 쿠팡 새벽배송이 시작된 가운데 10개월 만에 30대 배송기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남성은 캠프와 배송지를 오가는 '다회전' 배송을 하다 졸음운전 사고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기사는 "기사를 연료로 갈아 넣는 죽음의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새벽시간 '다회전' 배송하다 사고로 사망
11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 30대 남성 A씨가 지난 10일 오전 2시 16분쯤 제주시 오라2동 사거리에서 1톤 탑차를 몰다 통신주를 들이받았다. 사고 충격으로 차량 앞부분이 완전히 부서졌다. A씨가 운전석에 끼어 소방구조대는 유압장비를 이용해 구조해야 했다.
크게 다친 A씨는 도내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고 발생 12시간여 만인 오후 3시 1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망 원인은 복부 파열로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음주상태도 아니었고, 새벽시간 배송 일을 했기 때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제주시 쿠팡 1캠프에서 '야간조'로 아라동지역 새벽배송을 담당했다. A씨는 쿠팡에서 일하지만 쿠팡 노동자는 아니다. 쿠팡 배송은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맡고 있다. CLS가 직접 고용한 배송기사도 있지만 A씨는 CLS와 계약한 대리점 소속 기사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 모습.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특히 A씨는 쿠팡 1캠프(물류창고)에 들어가 물건을 직접 분류한 뒤 싣고 나오는 다회전 배송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동료 기사들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사고 시간대를 보면 새벽 2시쯤이다. 그때가 1회차 배송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가서 다시 물건을 싣는 시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고가 난 사거리에서 쿠팡 1캠프까지 1.6㎞로, 차로는 3분 거리다. 야간 배송기사는 보통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하는데 다회전 배송에다 신선신품 배송(로켓프레시), 프레시 백(신선제품 담은 다회용박스) 수거 등 업무로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기사들은 토로한다.
제주 쿠팡 배송기사 A씨는 "하루에 배송해야 하는 택배만 평균적으로 300개가 넘는다. 직접 물건을 분류해서 실어야 하고 또 당일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프레시 백까지 다시 찾아와야 해서 배송기사를 연료로 갈아 넣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사회적 타살, 더는 방관 말아야"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특성상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는 이미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쿠팡은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 사건에도 책임을 개인 건강 문제로 돌리며 근본적인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제주 쿠팡 노동자의 죽음 또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과로와 구조적 위험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 정부와 고용노동부, 제주도 역시 죽음을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돼야 한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더는 빠른 배송 명목으로 노동자 목숨이 희생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 또 다른 노동자가 희생되기 전에 죽음의 구조를 멈춰라.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제주 쿠팡 1캠프. 고상현 기자
이밖에 택배노조는 △쿠팡 측의 사망사건 경위 즉각 공개와 책임 있는 조치 △새벽배송 노동자 근무실태 등 전면적인 산업재해 조사 실시 △특별근로감독 즉시 시행 등을 요구했다.
쿠팡 새벽배송 기사들이 과로 등의 이유로 연이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5월 쿠팡 새벽배송 기사로 일하던 고 정슬기 씨가 주 73시간 넘게 야간근무를 하다 과로로 숨져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7월에는 50대 기사가 주 60시간 넘게 새벽배송 일을 하다 사망하기도 했다.
급기야 최근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새벽배송 제한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노동자 건강권 보호에 맞서 소비자 생활 편의를 해치는 과도한 규제 등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