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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도시를 덕질한다, 머물고 싶은 지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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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광양시, 인구포럼 '로맨스 광양' 개최
청년은 도시를 집이 아니라 '취향'으로 고른다
도시·로컬·브랜딩 전문가 "머물고 싶게 하려면 의미·재미·연결 필요"

전남CBS·광양시가 개최한 인구포럼 '로맨스 광양'. 전남CBS전남CBS·광양시가 개최한 인구포럼 '로맨스 광양'. 전남CBS
인구 절벽 시대, 청년은 도시를 집이나 일자리보다 '내 취향에 맞는가'로 선택한다. 도시를 하나의 콘텐츠처럼 소비하는 세대에게는 의미와 재미, 그리고 연결이 머무를 이유가 된다.

전남CBS와 광양시는 지난 12일 광양예술창고에서 '로맨스 광양, 가슴 뛰는 청년들의 도시' 포럼을 열고, 청년이 머물고 싶은 지역의 조건을 함께 모색했다.

이날 강연에 나선 도시연구자·로컬 사업가·지역 크리에이터들은 한목소리로, 청년을 붙잡는 도시는 결국 '청년의 취향과 일상이 스며들 공간을 마련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즐거운도시연구소 정수경 대표(도시공학 박사). 전남CBS즐거운도시연구소 정수경 대표(도시공학 박사). 전남CBS

청년은 '의미'로 도시를 선택한다

첫 번째 연사인 즐거운도시연구소 정수경 대표(도시공학 박사)는 전주 원도심에서 공유 사무실, 서점, 커뮤니티 등을 운영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학교, 캠퍼스로 만들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지자체 지원 없이도 수입의 40%를 원도심에 재투자하며, 사람과 콘텐츠를 다시 도심으로 불러들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많은 지자체가 청년 정책을 말할 때 일자리·주거·문화를 기본으로 내세우지만, 인구 감소 시대에는 "이 지역이 청년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은 검색 기반 이동, 취향 중심 커뮤니티, '덕질'과 '디깅' 문화로 움직이기 때문에, 청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설과 축제만 늘리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역을 지속적으로 '찾고 싶게 만드는 힘'은 관의 정책이 아니라 민간이 가진 다양한 자원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은 안 친해도 오지만, 카페 운영자·농부·지역문화 전문가 같은 사람들은 지역을 찾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며 "이러한 자원들이 모여 '지역 알고리즘'을 형성한다. 공공이 만드는 알고리즘은 두세 개면 충분하지만, 민간에서 만들어지는 알고리즘은 많을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전주에서 운영 중인 '한 칸 서점'은 이런 철학을 실험한 대표 사례다. 작은 책장 하나를 개인에게 임대해 각자 취향대로 서가를 구성하게 했더니 전주 청년뿐 아니라 외부 참여자도 늘며 '서울에 가지 않아도 전주에서 살 수 있다'는 정서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지역에는 이미 카페 운영자, 농부, 창작자 같은 잠재적 '별'들이 있다"며 "이들을 연결해 지역만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 청년 유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양양청년협동조합 김석희 이사장. 전남CBS  양양청년협동조합 김석희 이사장. 전남CBS 

"로컬의 첫걸음은, 100원이라도 버는 작은 프로젝트에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양양청년협동조합 김석희 이사장은 대기업 브랜드 전략가에서 로컬 청년 사업가로 전향한 경험을 들려줬다.

서울에서 15년간 광고·마케팅 일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이게 내가 원하는 인생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퇴사를 결심했다. 고향 양양으로 내려왔지만 높은 스펙은 오히려 취업에 걸림돌이 됐고 요양원 운전과 밭일 같은 소일거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로 나눈 뒤 "100원이라도 버는 프로젝트"를 목표로 삼았다. 웹툰 100편 연재, 농막 사무실 운영, 지역 굿즈 제작, 공정 여행 프로그램, 환경 프로젝트 등 사소한 시도들이 쌓이며 협동조합의 여러 사업으로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로컬 비즈니스의 핵심은 화려한 상품이 아니라 "지역에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채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스토리만 담은 굿즈는 오래가기 어렵다"며 "편의점·교통·병원처럼 실제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는 기반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 이주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시간의 자유'라며 "정규직 확대보다 다양한 파트타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로컬 특화 상품이나 관광 상품 같은 익숙한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이미 지역에 있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속 가능한 협동조합 운영 전략을 묻는 질문에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가능성 있는 것을 매출로 연결하는 집요함, 결국 영업이 핵심"이라고 답했다.

'시고르청춘' 오현영 디자이너. 전남CBS'시고르청춘' 오현영 디자이너. 전남CBS

'시고르잡화점' 시골이 브랜드가 되다

마지막 연사인 부안의 로컬 브랜드 '시고르청춘' 오현영 디자이너는 시골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브랜드로 만들었는지 소개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우체국에서 일하던 그는 "계산기만 두드리다 인생이 끝나는 것 같다"는 생각에 20대 중반에 퇴사했다. 이후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해 SNS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를 본 지역 주민들의 의뢰가 늘면서 2021년 친구들과 '시고르청춘'을 결성했다.

오 디자이너는 행정이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만들고 싶은 콘텐츠"에 집중했다. 시고르청춘은 부안의 일상과 청년 감성을 담아 네 가지 대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부안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옷으로 표현한 '시고르 룩북' △시골의 여유를 담은 플레이리스트 '시고르 플리' △지역 농산물로 만든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시고르 집밥' △관광지가 아닌 청년들이 즐기는 부안의 숨은 장소를 소개하는 '시고르 여행' 이다.

콘텐츠 실험은 지역 협업으로도 확장됐다. 농부의 성향을 반영해 '손으로 농사짓고 흥이 많다'는 의미를 담은 쌀 브랜드 '손흥미', 지역 농부들과 함께 장터를 활성화한 '팔왕장 장터', 부안의 노을을 캐릭터화해 만든 '지는해를좋아해' 버스킹 행사 등은 지역 주민과 청년을 잇는 계기가 됐다.

또 줄포에서 본 제비 삼 형제에서 영감을 얻은 티셔츠, 참새와 밀짚모자를 결합한 캐릭터 '참피' 등 지역성을 재치 있게 풀어낸 굿즈는 시고르청춘의 대표적인 브랜딩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시고르청춘은 디자인·굿즈 제작·유통을 축으로 한 3.0 단계에 들어서며, 시골 잡종 강아지 캐릭터 '시고르자부종'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과의 팝업스토어, 콜라보 프로젝트 등 확장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오 디자이너는 "부안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시골에서도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재미있게 일하는 팀들이 서로 연결되는 미래를 꿈꾼다"며 "시골에서도 충분히 크리에이티브하게 살 수 있다는 사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CBS·광양시, 인구포럼 '로맨스 광양' 현장. 전남CBS  전남CBS·광양시, 인구포럼 '로맨스 광양' 현장. 전남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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